최대봉(작가)

삽화 이석희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말년의 아인슈타인은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다는 것.’ 아마도 신이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모차르트일 것이다. 요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이 긴 이름의 천재는 1756년 오스트리아의 짤스부르크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최초의 교향곡을 썼고 열세 살에 최초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1787년 서른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교향곡, 오페라, 실내악, 피아노협주곡 등 수많은 작품들을 남겨 그렇게 짧은 생애에 그렇게 큰 음악적 업적을 남긴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차르트의 위대성이나 그의 음악적 성취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배우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초원을 환상적으로 물들이던 그의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다. 입동도 지나고 나뭇잎들도 지고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들판도 쓸쓸하고 해서 독자 제위와 모차르트의 따뜻한 음악들이 OST로 쓰인 몇 편의 영화여행을 함께 해볼까 해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는 그 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7개 부문에 수상한 최고의 영화였다.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의 자신 소유의 커피농장으로 떠난 덴마크 여성 카렌(메릴 스트립)의 좌절과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전개해가는 영화다. 그녀가 새로운 사랑으로 만나게 되는 모험가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가 가져온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K622》는 케냐의 고원을 낙원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이 경비행기를 타고 초원 위를 나는 장면에서도 흐르던 이 음악은 비행기를 날게 하고 초원의 동물들을 달리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1967)>은 스웨덴에서 일어난 두 남녀의 정사(情死)를 실화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스웨덴 백작인 탈영병 장교 식스틴 스페리와 덴마크 서커스단 출신의 소녀 엘비라 마디간의 운명적 사랑과 비극적 결말이 아름다운 스웨덴의 숲에서 펼쳐진다.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탈영한 장교와 의지할 곳 없는 서커스단 소녀가 그들이 사랑할 장소와 시간을 얻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가난은 그들을 궁지로 몰고 남자는 마지막으로 구한 빵과 포도주를 담은 바구니에 권총을 숨겨서 온다. 엘비라는 자신을 쏘라고 말하지만 남자는 차마 그녀를 쏘지 못해 머뭇거리고 때마침 날아온 나비를 따라 그녀가 춤추듯 초원을 거닐고 두 발의 총성이 들린다. 이 영화를 포함해 단 세 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 사라진 금발의 청순한 덴마크 여배우 피아 데게르마르크와 영화 전편에 흐르던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 K467》은 <엘비라 마디간>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차르트의 이 음악은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매력적인 별명을 얻었다. 참고로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에는 흔히 발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데 모차르트의 작품들에는 그것들을 분류한 독일의 음악학자 쾨헬(Kochel)의 이름을 따 ‘K’로 표시한다.

IMDB.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Internet Movie Data Base의 약자로 영화들의 평점을 매기는 곳이다. 십여 년 동안 그 사이트에서 평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이다. 아내와 그녀의 내연남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은행가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가 쇼생크 감옥에 수감된다. 거기에서 만난 흑인 무기수 레드(모건 프리먼)과 우정을 쌓게 되지만 악랄한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의 잔혹행위에 시달리면서 탈출과 복수를 꿈꾼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들을 정리하던 앤디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실린 LP판을 발견하고 그걸 축음기에 건다. 교도관들이 제지하려고 하자 문을 걸어 잠그고 전 교도소가 다 들리도록 음악을 튼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여성 이중창 《저녁바람이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가 교도소 전체에 저녁바람처럼 부드럽게 울려 퍼지고 교도소 마당의 죄수들이 멈춰 서서 넋을 잃고 그 소리를 듣는다. 레드가 그 장면을 연상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때로는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이 회색의 공간 속으로 날아 들어와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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