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영화의 성지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라면 율 브리너를 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연세가 좀 드신 분들 가운데에는 그가 출연한 영화 ‘왕과 나’, ‘십계’, ‘황야의 칠인’ 등을 되새기면서 율 브리너를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우로 꼽을지도 모른다. 그가 열연한 명화는 명절이나 연휴에 가끔씩 텔레비전에 방영되는데 다시 보아도 감동을 준다.

율 브리너는 우리하고도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친할머니가 몽골인이었으므로 동양인의 피가 흐른다. 2미터를 넘보는 장신의 존 웨인이나 록 허드슨, 게리 쿠퍼를 보면 율 브리너의 170센티를 겨우 넘는 키는 친할머니를 닮은 듯하다. 아버지가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 목재 채벌권을 얻어 부호가 된 것도 인연일 터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만주와 조선, 일본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율 브리너라고 하면 삭발하여 두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이 맨 먼저 그려진다. 머리를 죄다 밀어 윤기가 흐르는 두상에 노려보는 듯 약간 치켜뜬 두 눈의 다부진 용모가 떠오른다. 지난 한 때 고교생이랑 젊은이들 사이에 삭발한 율 브리너의 머리를 두드리면 목탁소리가 날 것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뮤지컬 영화 ‘왕과 나’에서 여러 명의 아내와 많은 자녀를 둔 시암왕국의 왕으로 출연할 때 처음 삭발했다는데, 그 후 삭발한 모습이 율 브리너의 상징이 되었다. 노예가 된 히브리인을 해방시키려는 모세에 대립하는 이집트의 람세스왕이 되었을 때는 물론, 금전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자로 누명 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맏이 드미트리가 되었을 때에도 머리를 밀어 정수리가 반짝거리는 듯했다.

율 브리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만은 피우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되었다. 폐암이 사인이었던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율 브리너가 태어나 자란 삼층 저택 앞마당에 ‘왕과 나’에서 두 손을 허리에 얹어 다리를 조금 벌리고 선 채 눈초리를 쏘아보듯이 하여 이세트라, 이세트라(etc, 기타 등등, 기타 등등)라고 하던 시암왕으로서 전통복장을 한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은 블라디보스토크의 관광명소이다.

삭발한 머리에 당찬 듯 야무져 보이던 율 브리너와 히브리민족을 이끌고 바닷길을 내어 모세의 기적을 이루던 찰톤 헤스톤은 고인이 되어 은막에서나 볼 수 있다. 왕자와 공주를 가르치는 황실 가정교사로서 율 브리너와 열연한 데보라 카 역시 영상으로만 남았다. 여섯 번이나 후보자가 되고도 수상을 못해 아카데미의 상복 없는 여배우였다는데 율 브리너의 뒤를 따르듯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전 제일 야당의 대표가 삭발을 하여 보도거리였다.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검은 머리를 모조리 밀어 버린 것이다. 삭발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여당과 집권세력의 오만한 정치를 규탄하고 말 많은 한 장관을 퇴임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삭발이 함축한 의미는 유별나다. 구한말의 유학자 면암 최익현은 목을 내놓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단발령에 항거했다. 불의에 맞서는 결연한 의지를 보일 때 머리를 깎는다. 삭발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뜻을 지닌다. 이를테면 사생결단을 각오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삭발도 여당과 현 정권에 맞서 투쟁하려는 비장한 결심을 표현한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삭발한 뒤 국회에서 열린 ‘제2기 여성정치아카데미 입학식’에서 그는 삭발한 자신의 모습을 두고 ‘제 머리 시원하고 멋있죠’라고 물으면서 ‘옛날에 율 브리너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더 멋있나요. 어제 삭발한 후 첫인사인데 제가 머리가 있었으면 훨씬 더 멋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삭발은 이해한다. 하지만 ‘삭발의 배우 율 브리너와 자신 가운데 누가 더 멋진 모습인가’를 물은 것은 뜻밖의 말이다.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경박한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장감이 감돌던 삭발하는 모습과는 동떨어진 희화적인 태도에 어리둥절하다. 분노하여 주먹을 쥐고 열변을 토하던 모습과 삭발의 멋을 따진 이중적인 언행이 몹시 혼란스럽다.

애초 연기로써 불멸의 배우가 된 율 브리너를 우스개일망정 자신의 삭발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삭발을 한 채 연기에 생애를 걸고 살아온 전설의 명배우를 자신과 견줄 수 있을까. 정치의식이랄까, 현실인식이 국민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삭발이 보여주기의 가식일 수도 있다는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자신과 율 브리너를 비교하여 멋을 말한 안이한 태도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생각마저 든다.

정치는 코미디가 아닌데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여당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까닭을 알 것 같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상대방이 허술하게 보이면 제 뜻대로 한다. 저러고서도 대표로서 옹골차게 의연히 맞설 수가 있을까. 기대는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삭발을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든 약점을 보인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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