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자화상

- 윤동주

산모롱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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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외딴 곳에 우물이 있고, 우물 속에는 달도 있고 구름도 있고 하늘도 있고 가을도 있다. 사나이는 가만히 우물에 비친 이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물이 얼마나 고요하고 맑은지 파아란 바람의 색깔까지도 감지된다.

우물이 비춰내는 아름다움 형상 중에 아름답지 못한 것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이것들을 가만 보고 있는 사나이다. 사나이는 곧 시인이다. 시인은 자신의 모습이 미워졌다가도 가엾고 또다시 미워졌다가도 그립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서 답을 찾으면 될 성 싶다. 나라 빼앗긴 일제강점기를 사는 시인의 자괴감이 곧 자기연민으로 이어진다.

달도 구름도 바람도 하늘도 가을도 그 누구의 속박도 없이 자유롭게 흘러가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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