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에 10만원 받았는데 지금은 ‘2만원’
선별비, 수수료 등 제하면 ‘1만 5천원’

“사과농사를 지은지 70년 만에 사과 값이 이렇게 폭락하기는 처음입니다”

지난 달 26일 오전 9시 봉현면 오현리에 위치한 삼영청과 경매장에서 만난 진모(82) 어르신의 말이다. 홍로 12상자를 갖고 나와 20만원을 받았다는 진 어르신은 “추석 대목에는 상자 당 14만원을 받은 사과가 추석이 지나면서 똥값이 돼버렸다”며 “사과 값 폭락사태가 가을사과(부사)까지 이어질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예년보다 20일 가량 빨리 찾아온 추석을 보내고 여름사과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던 지난 주 부터 사과 값이 폭락세를 거듭하면서 농민들의 한숨이 길어지고 있다.

 

▲ 이른 추석 이후 여름사과 폭락

추석 이후 가격이 내릴 것을 예상해 추석 대목에 상자 당(20kg) 5만 5천 원 씩에 모두 팔았다는 박모씨(64.풍기읍)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사과가 익는 계절에 맞춰 농협주도로 수매를 해야 한다”며 “대목이랍시고 익지도 않은 사과를 약으로 색깔만 내서 출하시키니 누가 사과를 먹겠느냐”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또 “최근 강원지역 시군들이 FTA자금을 줘 가며 사과농사를 권장해 재배면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폭락사태를 맞게 됐다”며 “폭락시세가 2년만 계속된다면 절반 이상의 과수농가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요까, 홍옥, 시나노, 홍로 등 3천 상자가 출하됐다는 삼영청과 김모 중매인은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생각 외로 소비가 안 되고 있다”며 “지금의 폭락시세가 가을사과(부사)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자리를 옮겨 풍기농협 백산공판장을 돌아봤다. 요까 16상자(4단)를 출하해 상자당 1만1천900원씩을 받았다는 봉현면 S 씨는 “농민들이 출하할 땐 22kg씩을 담아야 받아주고 있고 선별비 1천300원, 수수료 7%, 상자이용료 100원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상자당 7~8천원에 불과하다”며 허탈해 했다.

홍로 10상자를 싣고 나와 상자당 4천800원씩을 받았다는 김모씨(62.풍기읍)는 “주스용 흠집사과도 8천 원씩에 거래되는데 주스용 사과에 비해 품질이 월등하게 좋은 사과가 8천원에 거래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주스용 납품사과도 출하 희망농가가 폭주하면서 하늘에 별 따기”라고 성토했다. 그는 “처음부터 납품사과에 줄을 섰더라면 돈도 갑절이나 받고 고생도 덜했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 주스용 납품사과 수매 참여 ‘하늘의 별따기’

영주 지역 최대 청과시장인 삼영청과와 풍기농협 백신공판장 모두 이날 출하된 시나노, 양광, 홍로, 요까 등의 사과는 좋아야 2만 6~7천원에 거래되고 있었고 흠집사과는 7~8천원, 심지어 2천 100원에 낙찰된 사과도 있었다. 팔짱을 끼고 경매시세를 지켜보던 한 농민은 “추석에 10만원에 팔리던 사과가 지금 2만원에 낙찰되고 있다. 수수료를 제하고 나면 1만5천원을 손에 쥐게 된다”며 “과수농가들이 빚더미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 뒤 발길을 돌렸다. 또 황모씨(70.풍기읍 금계동)는 “시나노 101상자를 출하해 132만원이 나왔지만 수수료를 제하고 나니 100만원도 안 된다”며 허탈해 했다.

이날 백신공판장에 출하된 사과는 2천34상자라는 김종오 장장은 “미미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지금의 폭락사태가 가을사과인 부사까지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가을사과 역시 약보합세로 전망된다”고 했다.

주스용 납품사과 수매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과수농가들의 하소연에 따라 경북능금조합을 찾았다.

본지를 만난 이학제 유통과장은 “영주시로부터 4억 원의 보조금을 받아 상자당 8천 원(시도보조금 5천원, 능금조합 3천원)씩 농가에 지급하고 있다”며 “하루 5톤 화물차 5대(3천 상자)를 배정받아 매일 실어 내고 있지만 사과 값이 폭락하면서 납품을 희망하는 농가가 폭주하고 있고 군위 쥬스공장의 사정으로 농가 희망량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사과 값 폭락으로 과수농가들의 타들어가는 속내를 말해주는 듯 ‘과수농가 다 죽는다. 정부는 생산비 보장하라’라는 현수막들이 청과시장 곳곳에 걸려 펄럭이고 있다.

김이환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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