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대한광복단 학술부장)

동부4리 구름밭 채기중 지사 은거지(본지 마을탐방 사진)

필자의 이 글은 대한광복단이 결성된 장소가 영주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민족 역사에서 ‘광복’이라는 용어가 제일 먼저 사용된 곳은 영주이다. 1913년 대한광복단이 풍기에서 결성되기 이전에 ‘광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독립운동가나 단체는 없었다.

‘광복’이라는 용어는 ‘대한광복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1910년 한일병탄을 당함으로 대한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광복’이라는 말에는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던 대한제국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만큼 대한광복단은 우리민족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독립단체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영주시 풍기읍 소백로 2045에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이 조성되었고,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도 결성했다. 그러나 이 장소는 대한광복단이 결성된 장소는 아니다. 채기중을 비롯한 10인이 대한광복단을 조직한 장소는 풍기읍 동부3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광복단을 조직한 채기중은 상주 함창에서 풍기로 이주한 이후 처음에는 서부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곳은 민가와 붙어 있어 은밀하게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동부4리(소위 구름밭, 雲田)로 장소를 옮겼다. 채기중 등 대한광복단원들은 이곳에서 대한광복단을 결성했을 뿐만 아니라 활동했다. 이곳은 민가와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숲에 둘러싸여 있어 은밀하게 활동하기에 적합했다.

필자는 채기중이 일경에 체포된 이후 이 집을 아버지가 구입했다고 증언한 어른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어른은 집의 구조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는 증언의 내용을 기록하여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에 넘겨주었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이 장소를 기리는 활동은 진척이 없다.

영주시가,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가 진정으로 대한광복단의 정신을 기리기 원한다면 대한광복단이 결성된 그 장소를 알리는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구입하여 좀 더 구체적인 기념관을 조성하면 좋겠다.

일본의 무례한 행동이 도를 넘는 이 시대에 다시금 대한광복단원들의 정신이 그리워진다. 진정으로 영주가 광복의 고장이 되기를 원한다면 대한광복단원들의 향기가 남아 있는 그 장소를 기리는 구체적인 활동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영주시와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의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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