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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프리즘[153] ‘골로 간다’라는 말권서각(시인·문학박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9.26 15:57
  • 호수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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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왕이 항복 선언을 하면서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고 태극기를 꺼내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것도 잠시 9월 8일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진주하면서 조선총독부 건물에는 일장기가 내려오는 대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9월 7일에는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이름으로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포고령 제1조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정부의 모든 권한은 당분간 나의 관할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일본제국주의 대신 미군정이 점령군(Occupied Forces)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38선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포고령 제2조다. 맥아더 포고령 제2조는 “정부의 전 공공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기능 및 의무 수행을 계속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포고령 제2조에 의해 일제 때 공무원을 하거나 순사, 혹은 고등계 형사를 하면서 독립투사를 잡아가두고 고문을 하던 친일파가 그 자리에 그대로 복귀하였다. 해방은 되었지만 정부의 모든 기관엔 친일파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독립투사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의열단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약산 김원봉이 악질 고등계 형사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는 이야기는 8.15가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1948년 8월 15일 미군정의 비호를 받으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국회에서 의결한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남한 내의 좌익을 소탕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을 만든다. 국민보도연맹이란 과거 남로당 등 좌익 단체에 가입해 활동했거나 이와 관련한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전국에 걸쳐 30여만 명의 맹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 가운데는 남로당이 만든 야학에 한두 번 참가한 사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임의로 가입하게 한 사람 등 남로당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일정한 장소에 모이라고 하여 골짜기로 끌고 가서 학살하였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만 10만 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해방공간에서도 제주의 4.3사건, 여순 사건, 거창양민 학살 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등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한반도 곳곳의 골짜기마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사람의 수효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게 골로 가서 죽은 사람 가운데는 독립투사도 다수 있다고 한다.

골로 간다는 관용어는 한국전쟁 기간에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겪으면서 생긴 말이다. 골짜기로 끌려간다는 말이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학살 현장을 답사해 본 결과 현장은 대개 골짜기였다. 골에 몰아넣고 충으로 사살했다. 살아남은 자의 증언에 의하면 총알이 아까워 일렬로 세워놓고 쏘기도 했다고 한다. 골로 간다는 말, 우리근대사의 아픔이 서려있는 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의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는 처칠의 말이 새삼 사무친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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