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골은 일제 때 신사(神社)가 있어 생긴 지명
본지 마을탐방 통해 원래 지명 ‘선계동’ 찾았다

영주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작은 마을은 영주1동 1통 지역으로 일제 때 신사(神社,일본국 사당)가 있다하여 신사골(神社谷)이라 부른다.

본지 ‘우리마을탐방’이 지난 6월 말 신사골 탐방 중 이 마을 임여상(79) 씨로부터 “이곳의 원래 지명이 ‘선계동(仙溪洞)’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 지명의 근거를 찾기 시작됐다.

‘선계동’은 안양원 경우 스님이 지은 ‘구강정(龜江亭, 제민루 맞은편에 있는 정자) 시판’에 「淸凉不讓仙溪洞(청량불량선계동), 시원한 곳 선계동에 양보 못하고」라는 구절이 있어 스님께 선계동의 내력을 여쭈었다. 경우 스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야성인(冶城人) 송 학사(宋泰翼)께서 살아계실 때 영주향토고금지(榮州鄕土古今誌)에 철탄산 아래 지명이 ‘선계동(仙溪洞)이라’고 말씀하셨다”며 “그 내력을 밝혀 보라”고 했다.

송태익(1896生)의 동우집(東寓集) 안양원창건기에 「鐵呑山下坊名仙溪(철탄산하방명선계)」라고 적었다. ‘철탄산 아래 동네 이름이 선계동’이라는 뜻이다. 또 마을 앞에 낙운정(洛雲亭)이란 정자가 있다. 신사가 있던 자리다. 금주(錦洲) 황헌(黃憲,1874生,평해인)이 지은 낙운정기에 보면 「동족들과 상의하여 강주(剛州) 철탄산(鐵呑山) 아래 선계동(仙溪洞)의 땅을 간택했다」라고 썼다.

확실한 문헌 근거를 찾은 마을 사람들은 임여상 어르신을 대표로 영주1동사무소 등 관계기관을 방문하여 “선계동 표석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 마을 사람들의 청원이 이루어져 지난 5일 ‘선계동 표석’ 제막식을 가지게 됐다.

임여상 어르신은 “지난 7월 4일자 영주시민신문 우리마을탐방에 선계동이 소개된 후 신문을 들고 영주1동을 찾아가 선계동 표석을 세워줄 것을 건의한 후 한 달여 만에 마침내 성사되어 기쁘다”며 “마을의 옛 이름을 찾아준 영주시민신문과 표석을 세워준 영주1동사무소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은 ‘신사골’이란 일제 잔재를 씻어내고 옛 이름을 찾아 선계동이란 마을 표지석을 세우니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이 마을 우덕하(80) 어르신은 “표석을 세운 날을 ‘2019년 8월 15일’ (실제 새긴 날) 광복절로 한 것 또한 참 잘 했다”며 “마을 앞에 표석을 세우니 동네가 훤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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