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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사과(謝過)도 때가 있다.김영애(시조시인, 수필가, 본지논설위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9.05 17:03
  • 호수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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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謝過)는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할 수만 있으면 평생 남에게 사과하는 일 없도록 바르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성인군자도 제 그름은 모른다 했으니 평생 사과를 안 해도 될 만큼 바르게 사는 사람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어울려 산다는 것은 가장 작은 의미로 남과 말을 주고받는 일이다. 따라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의 체면에 손상을 주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허다한데 고의적으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본인도 모르게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혀를 통해 나오는 말이 칼보다 무서울 때도 있어 「듣는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실은 말한 입은 사흘이 아니라 금방이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세월이 가도 방금인 것처럼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상처 준 사람은 상대의 기분을 전혀 눈치조차 못 채는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로 사람 사는 세상에는 감정에 기인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무의식적으로 말로 받은 고통에 대해서도 이러할 진데 상대로부터 받은 상처가 계획적이고 장기간이며 신체적 위해를 받거나 경제적 핍박 같은 고통을 받은 기억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무마하는 데는 반드시 사과(謝過)라는 것이 필요하다. 사과(謝過)란 일이 발생한 직후 즉각 할수록 관계회복에 좋지만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몰라서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인정하는 용기가 없으면 못하는 것이고, 하고 싶어도 시기를 놓치면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잘못이요.” 하고 빨리 말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완성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도량이 작은 소인(小人)에게는 사과란 어려운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요구가 있기 전에 즉각 사과 하는 것이 좋고 이왕 하려면 진정성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마지못해 하는 사과와 변명을 곁들이는 사과는 상대방에게 사태를 모면하려는 심사로만 보인다. 사과 뒤에는 상대의 용서가 있어야 새 출발이 가능한데 미지근한 사과를 듣고는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들턱이 없다. 진정성을 전하지 못하는 사과는 상대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바람만 만나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사죄(謝罪)의 시기를 놓친 일본을 본다. 그들은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으로 분명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앞에 화끈한 사죄(謝罪)를 하지 못하고 있다. 찔끔거리는 애매모호한 말로 한두 번 하는 사과는 진솔한 사과를 원하는 우리 할머니들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엄청나게 꼬여가면서 작금에는 양국관계가 틀어지는 결과를 낳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피해자는 초지일관 진정한 사죄를 원한다고 외칠 뿐인데 확실한 잔혹의 역사 앞에서 왜 시원하게 진정한 사죄를 하지 못할까?

폴란드에는 바르샤바 항쟁 때 독일군이 저지른 만행을 증명하는 아우츠비츠 수용소가 있다. 살아 들어가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한줄기 가스가 되어야 나온다는 악명 높은 수용소이다. 수용자들의 소지품과 그들의 머리카락으로 짠 카펫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다. 미루어 짐작하면 독일과 일본은 잔악한 가해자이고 한국과 폴란드는 비운의 피해자였다.

그런데 사후(事後), 독일은 대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폴란드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집권자들이 눈물로 사죄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보상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수학여행을 온 교사가 우리의 조상들이 약소국가에 행한 짓을 똑바로 보고 너희는 남을 괴롭히는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우리 조상들이 왜 그랬을까요? 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조상들이 폴란드에 행한 잔악한 행동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는 독일후예의 태도는 후대의 폴란드인들이 독일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갖지 않게 하고 양국이 과거사로 반목하지 않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솔직한 인정과 빠르고 진정한 사죄가 엄청난 역사의 상처를 아물게 한 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앞뒤를 못 가릴 정도로 비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레벨이 다른지 일본은 아직도 피해국에 대한 사죄에 인색하다. 할 만큼 했다는 태도로 36년간 피해자로 살아온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쳐 부셔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이웃이다. 과거를 툭 털고 서로 도우며 앞으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심어린 사죄가 먼저여야 하고 흔쾌한 용서가 뒤 따라야 하는데 그런 날이 올 것인가. 모르긴 하지만 일본으로부터 이 이상의 국가적 사죄는 앞으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사과, 사죄란 시기를 놓치면 점점 더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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