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영주를 사람중심 보행 친화도시로 만들자

바르셀로나 람블라 거리
보행전용도로
슈퍼블록 이후 바뀐 도로
자전거전용도로
보행로표지판
스페인 바르셀로나 만사나(블록)

보행은 그 자체가 활동이고, 운동이다. 또 기본적인 통행수단일 뿐만 아니라 승용차, 버스, 철도, 택시 등 모든 교통수단을 연결해 주는 친환경적 기초교통수단이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동차 위주의 교통 환경이 조성되면서 보행자의 기본적 통행권은 무시됐고 안전성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본지는 하망동보행환경지구와 연결해 사람중심의 보행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롭게 탄생한 후생시장,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새롭게 변모한 영주365시장, 지난해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된 영주1동을 중심으로 시내중심 관광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연재 순서>

[1] 하망동 보행환경개선 사업 그 이후
[2] 대도시의 보행친화 정책-서울시와 대구시
[3] ‘수원형 차 없는 거리’와 전주 ‘첫 마중길’
[4] 차량통행 제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5] 차없는 도시 스페인 북부 폰테베드라
[6] 보행 천국 스페인 마드리드 그란비아 거리
[7] 사람 중심 보행친화도시로 가는 길

도심내 심각한 교통...보행친화로 해결
늘어난 공공공간에선 각종 이벤트 열려

세계 대부분의 도시는 자동차가 지배하고 있다. 시간을 내서 도시를 걸어 다녀보면 좁은 인도로 내몰리고 신호등 앞에 대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고기가 물 없이 못살 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됐다. 차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다르다.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자동차가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보행자와 자전거족들에게 도시공간을 내어 주고 차 없는 삶이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있다.

슈퍼블록이란
인구 160만 명의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88서울올림픽 다음에 1992년 올림픽을 연 도시여서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회색빛 이미지의 도시였지만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도시의 현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지난해 연 관광객 방문수가 1천8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활발하고 다채로운 도시로 변모했다. 바르셀로나의 해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2014년 이 도시는 심각한 대기오염에 직면했다. 바르셀로나와 주변 35개 지방 정부들은 EU(유럽연합)에서 제시한 대기질 개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해 조기 사망자가 매년 3천 500명에 달했고 아동들의 두뇌 성장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지역 내 자동차 교통은 심각한 소음공해도 유발했다. 이 때문에 바르셀로나 시는 교통량을 현재의 21%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통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 계획 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는데 이른바 슈퍼블록이다. 바르셀로나를 하늘에서 보면 잘 정돈된 네모 형태의 여러 블록이 장관을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의 기본 블록 단위인 만사나(Mansana)가 모여 만들어낸 바르셀로나의 도시구조이다. 만사나(블록)는 가운데에 공원이 위치해 있고, 테두리에는 주거 지역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가로×세로 방향으로 각 3개씩의 블록을 묶어 총 9개의 블럭이 되는 구조로 이를 슈퍼블록(superblock. 카탈로니아어로 수퍼릴superilles)이라고 부른다. 가로세로의 길이가 각각 400m로 5천명~6천명이 생활하는 작은 마을이다.

슈퍼블록의 통행 원리
도시설계 개념 중 하나인 슈퍼블록은 한때 진행 중인 자동차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다른 통로가 없는 대규모 블록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도심에서 자동차 통행을 줄이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가 제안한 계획안을 살펴보면 9개의 정사각형 블록을 잡고 단순히 지나가기만 하는 차량은 차단한다. 이곳을 지나가기만 하는 버스, 화물차, 기타 차량들은 블록 내부를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해야 한다. 수퍼블록 내부는 시속 10km로 차량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슈퍼블록 테두리 즉 메인 도로에는 누구나 자동차로 접근 가능하지만, 슈퍼블록 안쪽으로는 거주민들만 자기 차를 가지고 접근이 가능하다. 슈퍼블록 내를 접근할 시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 보행자 전용 도로가 있기에 자전거나,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다. 거주민이 아닌 경우에 예외로 차량 접근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슈퍼 블록 내에 있는 상업지구 즉 상가들의 물류를 위해 차량이 많이 다니는 시간을 피해 최대 2시간 까지만 주차를 하고 물건을 내릴 수 있다. 또는 메인 도로 쪽 주차 공간에 트럭이나 봉고차를 주차하고 물류를 운반할 수 있는 소형 친환경 운송 수단으로 물류를 운반할 수 있다.

슈퍼블록이 가져다 준 놀라운 변화
이 슈퍼블록의 도로 재편으로 좋아진 점은 일반 도로 구조와 달리 이 슈퍼블록 내에 차선을 줄이고, 그 만큼 줄인 공간을 보행자 전용도로로 확충하는 것으로 보도 블록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또 노면 주차 대신 지하주차장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생겨난 거리공간은 장터, 야외게임, 각종 이벤트 등의 장소로 적극 활용되고 있어 실제 수퍼블록 안에서는 즐거운 풍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차량 통행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중간 중간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쉬어 가거나 이웃들과 교류 할 수 있다. 공유 자전거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언제든지 빌려 타고 슈퍼블록의 끝 지점인 바닷가로 향할 수도 있다. 2018년 자전거 이용율이 67%에 달하고 반대로 차량 이용률은 21%가 감소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이미 이같은 실험의 결과는 바르셀로나 북서쪽에 위치한 비토리아-가스테이즈(Vitoria Gasteiz)라는 도시에서 검증된 상태다. 2008년부터 슈퍼블록을 운영하고 있는 이 도시는 도심에 있는 슈퍼블록의 경우 과거 45%에 불과했던 보행공간의 비율이 74%로 증가했고 차량 통행도 줄어 소음 또한 66.5데시벨(소음측정 단위)에서 61데시벨로 줄었다. 더군다나 산화질소가 42% 줄어들었고 미세먼지도 38%가 감소했다. 이에 더해 지역경제도 살아났다고 한다. 거리를 차보다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꾼다고 해서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사람이 느리게 걸어 다니거나 느리게 자전거를 타고 다닐수록 발걸음을 멈춰 주변 상점을 들르게 되면서 사회활동의 중심이 형성되는 것이다.

슈퍼블록의 역사, 그리고 새로운 실험
바르셀로나는 이 계획을 실행하는데 이 도시만의 이점을 갖고 있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 부터 도시가 형성됐고 도시의 대부분이 예전부터 격자 형태였다. 슈퍼블럭 계획안에 영감을 준 에이샴플라(Eixample)구역은 160년 전인 1859년에 이미 토목기사 ‘이데폰 세르다’라는 사람에 의해 격자형으로 설계됐다.

이 구역은 바르셀로나 도심 내 구시가지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진 작은 마을을 둘러싼 지역이다. 세르다는 ‘도시화’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학교나 병원같은 도시시설을 균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113m×113m크기의 블록형 격자형 도시를 고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슈퍼블럭 설계가들은 이러한 계획을 잘 실행하기 위해서 굳이 격자형 거리구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떠한 형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차량 통행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문제는 이미 상업활동이 활발한 부촌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용도지역 정책은 주거와 상업지역의 분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상적인 걷기좋은 지역은 이 두가지 용도가 혼합되어 있다. 더욱이 주차장 최대 확보량 규정 때문에 도시에서 쉽게 걷지 못하게 됐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미국 등 여러도시에서 걷기 좋은 공간이란 것은 일상과 동떨어진 럭셔리 아이템으로 국한돼 있다.

바르셀로나 계획의 차별점은 보행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특정구역을 따로 떼어 고급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수퍼블록을 전 도시에 걸쳐 적용하고 도시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할 권리로 ‘차 없는 거리’를 선언한 것이다. 슈퍼블록이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슈퍼블록 밖에서는 오히려 혼잡이 더 심화되고 있는데다 정작 자신들의 집 앞에서는 주차를 하지 못하게 되는 불편을 겪게 되면서 건물 곳곳에 슈퍼블록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게시되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가 슈퍼블록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모든 도시민들이 자동차로 움직이고 자동차로 어떤 곳이든지 갈수 있다는 이 생각 자체가 한계가 있다. 오히려 도시성장을 제한하고 도시의 건강성을 헤치고 있다. 차 없이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은 우리나라의 지형과 도시구조와는 많이 다르지만 형태적인 측면이 아니라 공공공간과 보행자에 대한 철학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서현제 발행인/ 오공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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