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선(소설가 본지 논설위원)

부석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 영주시가 2000년에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영주백년사’ 8페이지에 보면 부석사 보수공사에 대한 사진이 나온다. 기와를 벗겨낸 무량수전 지붕에 비를 맞지 않도록 가마니를 타서 덮고 통나무로 무너지는 건물을 지탱하는 거치대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1916년부터 1919년까지 4년에 걸쳐 해체 복원 공사를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한복에 갓을 쓴 선비와 남루한 복색을 입은 기와를 굽는 도공들과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라를 잃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민족혼을 일깨우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이처럼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 부석사는 조상님들의 이런 피나는 노력이 있어 현재가 있는 것이다. 당시에 붕괴된 무량수전을 해체 철거를 했더라면 오늘이 있을까? 부석사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는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조상님들의 민족혼과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의 부석사가 있고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1987년 소수중학교에 근무했다. 당시 순흥까지 가는 도로는 1차선 길로 아주 불편했다. 어느 날 점심 도시락을 먹고 시간이 남아 자전거를 타고 소수서원에 갔다. 당시 소수서원은 울타리도 담장도 없는 폐서원과 같았다. 소나무 밑은 술판을 벌이는 야유회 장소이고 경내 풀밭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그런 곳이었다. 소수서원은 그렇게 방치가 되고 있었다. 지금의 매표소 자리에 간이 초소처럼 생긴 이름뿐인 매표소가 있었다.

당시 소수서원에는 정모 씨가 혼자서 넓은 서원을 지켰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환담을 나누는데 이상한 말을 했다. 아침마다 서원 입구에서 강학당으로 가는 소나무 길을 싸리비로 쓰는데 길을 쓸 때마다 소나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재미있어 정말 그러냐고 몇 번 물어봐도 자기는 소나무와 인사를 나눈다고 했다. 그와의 대화가 재미가 있어 점심시간이면 자주 소수서원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와 같이 소수서원 청소도 하고 서원 경내 순찰을 돌기도 하고 건물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건물에는 모두 들어가서 점검을 했는데 유일하게 강학당 옆 작은 사당은 문이 굳게 잠긴 자물통만 확인했다. 당시 소수서원에서 유일하게 그 건물은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그에게 왜 이 건물만 잠겨 있냐고 물었다.

그는 이 건물은 주세붕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으로 외부에 공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자물쇠를 따고 영정각 안을 보여 주었다. 주세붕 선생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다. 선생의 영정에 엎드려 절을 하며 예를 올리고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갔더니 그는 몹시 당황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슨 일이냐고 다그쳤더니 조금 전에 관리소에 혼자 앉아 있는데 검정색 승용차가 들어오더라고 했다. 당시에는 승용차가 없던 시절이었다. 깜짝 놀라 나갔더니 검정색 양복을 입은 키가 큰 거구의 남자가 자기에게 다가 오더니 “수고 하십니다” 하고 손을 쑥 내밀더라고 했다. 깜짝 놀라 손을 잡고 얼굴을 쳐다보니 1980년에 대통령직을 사임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빙그레 웃으며 서원 구경을 좀 시켜 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는 최 전 대통령에게 서원 경내를 자세히 설명하고 안내했다. 물론 서원 경내에서 유일하게 자물쇠로 잠겨 있는 주세붕 선생의 영정까지 보여 드렸다. 서원 경내를 모두 돌아본 최 전 대통령이 수행원이 열어준 승용차에 타지 않고 그의 손을 굳게 잡으며 이렇게 말하더라고 했다. 지금은 소수서원이 관리가 되지 않고 있지만 후일 우리 후손들에게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수서원은 조상님들의 혼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이니 부디 잘 보존하고 관리해달라는 당부를 하더라고 했다.

이튿날 점심시간에 갔더니 그가 이렇게 말을 하며 웃었다. 어제 오후에 죽령검문소에서 제일 먼저 전화가 왔더라고 했다. 최 전 대통령이 혹시 거기 오지 않았냐고? 당시는 전경이 근무하는 희방사 진입로 입구에 검문소가 있었다. 그는 소수서원에 들렸다가 봉화로 간다고 하며 떠났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경북도청에서 똑같은 질문을 하는 전화가 왔다. 또 영풍군청에서 전화가 오더라고 했다.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런데 오후 5시가 지나 바로 코앞에 있는 순흥면사무소에서 같은 내용의 전화가 오더라고 하며 웃었다. 당시 그는 정액 보수도 없이 소수서원을 관리하는 관리인으로 근무했다. 그의 주 수입은 입장료 징수인데 울타리도 담장도 없는 소수서원에 누가 돈을 내고 들어가겠는가.

2009년 어느날 밤 9시가 지나 세미나가 끝나고 겨울 어둠 속에 선비문화수련원 마당에 나왔더니 누군가 어두운 밤에 마당을 비로 쓸고 있었다. 23년 만에 그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선비문화수련원에 근무 한다고 했다.

유불 문화의 성지는 그냥 된 것이 아니다. 무량수전의 해체 보수에 참가한 사진 속의 이름 없는 선비와 도공, 그리고 그 공사에 참가한 사진 속 조상들의 노력이 있어 부석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유림과 순흥면민들, 그리고 시민들의 자기희생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소수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어떻게 등재가 됐겠는가. 오늘 이 시간까지 유지 보존하고 관리한 분들의 노고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