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적이 있는 이영훈은 일제강점기 종군 위안부 제도는 ‘사실상 공창 형태의 성매매업소’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최고 학부로 공인된 서울대 교수의 주장이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승만 티브이>에 출연하여 “조선시대 기생이야 말로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였다.”고 주장했다. 기생은 정부와 관아의 명을 받아 관리와 귀한 손님의 침실에 들어 성적 위안을 제공했다고 했다.

또한 그가 지었다는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책에서 그는 세종이 함경도에 기생을 두어 혼자 부임한 장교를 접대하게 한 기록을 근거로, 기생제가 조선조 풍속으로 정착되어 갔다고 주장하며 기생제의 원류를 세종으로 지목하였다. 또한 ‘춘향전’을 분석하여 춘향의 꿈은 첩이라도 좋으니 서울 사는 양반이 되는 것이며, 기생제는 서민대중의 내면의 가치로 추구되었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종군 위안부는 일본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아니다. 이는 분명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조선시대가 계층사회여서 기생신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세종이 함경도에 기생을 파견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조선시대 때 유럽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가 계층사회였다. 세종이 기생을 파견한 건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 실정이다. 그러나 그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 그것이 조선시대의 보편적 제도요 문화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대명률’과 ‘속대전’에는 기생을 간음한 수령은 적발하여 파직한다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생을 간음한 관리를 처벌한 기록이 차고 넘친다. 조선조 기생은 높은 교양을 갖추고 가무와 시로 선비와 교류한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로 미루어 이영훈의 주장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고등학생 논술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자가 서울대 교수였다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춘향전 해석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말 대로 춘향이 다만 신분상승만 추구했다면 변 사또의 요구를 허하여 그의 첩이 되는 것이 훨씬 합리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생이 아무나 취할 수 있는 신분이라면 춘향은 왜 변 사또에게 항거했겠는가? 춘향은 조선시대 신분제에 항거했으며,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 우리의 딸이었다. 춘향이 신분상승을 위해 이몽룡을 택했다는 그의 주장은 춘향에 대한 모독을 넘어 이 땅의 여성에 대한 모독이다.

일제 강점기 종군 위안부들이 자발적인 성매매를 했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 한다. 일제 강점기까지 이 땅에는 여인의 정절이 절대적 가치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지금도 이 땅에는 여자가 정절을 잃는다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서가 남아 있다.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 우리의 딸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는 것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정절을 얼마나 소중한 가치로 여겼는가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다.

위안부가 자발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직접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증거다. 왜놈들이 처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는 마을마다 아직도 남아 있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숨어 다니기도 했고, 마음애도 없는 조혼을 하기도 했던 이야기가 아직까지 마을마다 남아 있다. 이토록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종군위안부가 자발적이었고 말하는 자는 학자의 탈을 쓴 토착왜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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