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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봉의 문화읽기[198]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최대봉(작가)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8.30 10:44
  • 호수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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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석희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은 디즈니의 새 영화 『뮬란』의 개봉을 앞둔 영화배우 류이페이(유역비) 때문이었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 영화『뮬란(1998)』은 목란(木蘭, 목련)의 중국어 발음이다. ‘12년을 함께 했지만 아무도 뮬란이 여자인 걸 몰랐다네(同行十二年 不知木蘭是女郞)’라는 구절이 전해오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작자 미상의 ‘목란사(木蘭辭)’가 그 연원(淵源)이다. 심청이처럼 가난한 집안의 효녀였던 뮬란은 늙고 다리를 다친 아버지 대신에 남장(男裝)을 하고 전쟁터에 나간다. 목련처럼 예뻤지만 무술도 뛰어났던 그녀가 많은 공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그녀가 여자인 걸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20년 만에 만화가 아닌 실사(實寫)로 찍어 개봉을 앞둔 그 영화의 주인공 뮬란 역을 맡은, 한때 송승헌의 연인으로서도 화제를 모았었던 중화권의 여배우 류이페이가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에 올린 글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시위 중인 여대생이 고무 탄환을 맞아 실명을 할 정도로 잔인하게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진압하고 있는 홍콩경찰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홍콩시민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What a shame for Hongkong)’는 글을 올려 평화와 민주적 가치를 지지하는 세계인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것이다.

홍콩은 중국 남부 해안의 어민들과 해적들이 살던 섬이었다. 아편전쟁(1939~42)으로 인한 난징조약을 통해 영국에 조차(租借)된 뒤 세계 무역과 금융, 관광의 중심으로 도약한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한 국가지만 공산국가인 중국과는 별개로 홍콩의 자본주의 체재는 유지되었지만 최근 범죄인인도조약(송환법)에 중국을 포함시킨다는 법 개정을 두고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인권운동가나 반체제인사들이 합법적으로 중국에 인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홍콩시민들의 시위였다. 홍콩시민 740만 가운데 300만이 참가한 평화적인 시위에 중국군이 개입할 수도 있어 수천 명이 학살당한 천안문사태(1989)가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세계인들의 우려에 찬물을 끼얹는 류이페이의 발언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홍콩 시민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니.

마크 트웨인은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라고 했다.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신이 금지한 열매를 따먹고 나서 부끄러움을 알게 돼 나뭇잎으로 몸의 치부를 가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약성서 『창세기』에 전하고 있다. ‘부끄럽다’는 말에는 ‘수치스럽다(shame)’와 ‘수줍다(shy)’, 두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의 부끄러움이란 ‘정든 임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의 <밀양아리랑>의 수줍음이 아니라 맹자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이르는 부끄러움이다. 스스로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羞) 타인의 옳지 못함을 미워한다(惡)는 뜻이다. 남을 탓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함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철저한 자기성찰과 반성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왜 언제나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당사자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우리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의무적 양심’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은 도둑들은 검찰청의 포토라인에서 옷가지를 뒤집어쓰며 얼굴을 가리기가 바쁜데 큰 도둑들은 고개를 들고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면서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말을 남기길 잊지 않는다. “유족에게 미안하지 않다.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였을 뿐이다”라는 토막 살인범 장 아무개의 섬뜩한 말도 그들에게서 배운 학습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 못 된 것만 배우고 부끄러움은 배우지 않는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박완서 선생이 1970년대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잘 살아보세’라는 기치 아래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성을 부끄러움과 등치(等値)하면서 그걸 가르치는 학원이라도 있어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럭이게 하는 상상으로 소설을 끝맺고 있다.

오늘(8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다. 109년 전 나라를 빼앗긴 부끄러운 날이다. 이제 더는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좀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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