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물의 침묵

- 수피아

물은 돌의 입을 빌려 말한다

먼저 흐르던 물이 돌, 외치면

뒤에 따라가던 물도 돌, 하며 흘러간다

물이 물을 만나면 말이 많아지고,

차곡차곡 쌓인 돌로 가슴은 무거워지고,

말과 말은 한 데 뭉쳐서 힘없는 누군가에게 날 선 칼이 된다

돌돌, 돌돌 수군거리는 떼거리가 된다

보이지 않은 칼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와서는

계곡의 옆구리를 깎고 할퀴고 물어 뜯는다

급하게 휘돌아 나가는, 위태로운 삶의 급경사에 이르면

상처 많은 계곡의 거친 물소리가 들린다

물은 커지는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사나워진 말의 물살을 가라앉히기 위해,

때로는 낭떠러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처럼 포효한다

높은 곳에서 시원하게 몸을 던지며

말을 떨쳐내는 폭포수의 용기는 장엄하다

비워진 자신을 이끌고 떨어진 물은 강으로 간다

소한(小寒)에 강둑을 걸어보면

열반(涅槃)에 든 침묵하는 언 물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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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둑을 걷다가 언 강을 본다. 순간 물의 침묵을 본다. 오랫동안 침묵하며 평온한 물의 침묵은 세상 어떤 침묵보다 더 깊은 침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의 침묵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생각은 마침내 거슬러 올라 발원지까지 간다. ‘먼저 흐르던 물이 돌, 외치면/ 뒤에 따라가던 물도 돌, 하며 흘러간다/ 물이 물을 만나면 말이 많아지고’ 소곤소곤 속삭이듯 흐르는 맑고 고요한 물은 보태고 보태어 나쁜 소문처럼 커지고 무서워지고 끝내는 흉기가 되어 어떤 것들을 상처내기에 이른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으면 어떤 모습이 될지 그 끝을 짐작키 어렵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엄해진다. 우리의 삶 또한 그와 같다.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용기,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만이 고요하게 흐르는 평화를 보상받는다. 그것을 예리한 시선으로 사유하고 직시한 시인의 눈이 날카롭다. 시인은 그것을 물의 침묵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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