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 규제를 시작하면서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총성 없는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치권이나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시시각각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 사태의 책임이 우리정부의 외교 무능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한다.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만 부추긴다고 한다. 심지어는 대통령을 행해 대통령이 싼 분뇨는 대통령이 치우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에게는 해결책이 있는가? 외교적 노력이라는 추상적 언어뿐이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한국과 일본은 공히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에 의해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불편한 동거를 하는 상태다. 1965년 한일협정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일본의 사과 없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대 속에 맺어졌다. 한일관계는 언젠가는 정상화 되어야겠지만 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과제다.

양자가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먼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먼저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독 수상 브란트는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피해자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일본에게는 사과할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겨우 ‘과거의 일에 대해 통석의 염을 느낀다.’ 정도의 말로 퉁치고 넘어가려 한다. 여기에 어떤 외교가 필요한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베정권은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남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국가가 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100년 전에 제국주의 침략을 했듯이 제국주의 침략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에게 경제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사실 일본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는 국제질서에 대한 엄청난 도발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어떤 외교가 필요한가? 독도를 주어야 하는가?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에 대해 없었던 일로 해 주어야 하는가?

피해자는 우리이고 사과를 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분노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는 것에 다르지 않다. T. 플러는 ‘분노는 영혼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분노가 없는 사람의 마음은 불구다.’라고 했다. 수주 변영로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다.’고 했다. 우리의 분노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값싸지 않다.

우리 민족이 3.1혁명 그날처럼 뜨겁게 분노하고 있다. 상인들은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일본 제품은 팔지 않겠다고 한다. 일본으로 떠나려든 관광객들은 서둘러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시민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누가 이런 분노를 값싼 반일감정이라 하는가. 우리는 분노한다. 고로 살아 있다. 우리고장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본산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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