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일본 해적을 왜구라고 부른다. 삼국시대에도 왜구의 침입은 있었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왜구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고려 말부터다. 이후로 왜구의 침입은 우리의 근심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무사집단으로 권력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규모 왜구로 조선을 침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메이지유신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국력이 강대해진 왜구는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고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왜구의 침입을 당했다. 연합군의 승리로 우리는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지만 일본은 아직도 36년의 식민지 침탈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학교에서 왜구의 조선침략이나 식민지침탈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있어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구가 우리에게 한 짓을 알지 못한다.

독일이 2차 대전 패배 이후 철저하게 반성하고 배상한 것과 달리 일본은 아직도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아베정권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아베는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의 대법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무역제제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분노한 우리 시민들 사이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일본이 우리를 이토록 만만하게 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토착왜구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제강점기 ‘정암사고’라는 문집에서 '토왜(土倭)’라는 말이 친일부역자란 뜻으로 처음 사용됐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는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칼럼이 실렸다. 토왜는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이라고 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을사오적 같은 토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5년 6월 22일 박정희는 이승만도 하지 않았던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반대하는 대학생들을 감옥에 가두고 기본 조약과 4개 협정을 정식으로 조인했다. 그러나 한·일 협정문에는 일본 측의 공식사과 한마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가 36년간 강탈해간 한국의 문화재를 일본의 소유물로 인정했고 어업 문제에서는 평화선이 철폐되고 일본 측의 주장대로 12해리 전관수역이 설정되었다. 그의 딸은 피해 할머니들의 뜻과 상관없이 위안부 문제를 덜컥 합의해 주었다.

최근 야당대표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했다. 조선일보와 중알일보는 일본어판에서 일본의 보복 무역규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을 뽑았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인 한국 청와대,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 토착왜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짓들이요, 할 수 없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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