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오피니언
[시민칼럼] 아는 것이 힘이라고?어안 최상호(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7.18 10:47
  • 호수 725
  • 댓글 0

오래 전 초등학교 1급 정교사 연수를 받으면서 들은 이야기다. 직장인은 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 그것이다. 그중 가장 편한 경영자는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고, 교단에서도 바람직한 인재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어쨌거나 최악은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떤 조직에서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일을 벌이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뭔가를 제대로 알고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고 있는 지식이 오류인 경우도 많고, 어설프게 알거나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믿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의 각종 정책과 활동을 지켜보면 새로운 적폐로 비칠 때가 있다. 바로 ‘내로남불“의 반복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대 어느 정권이든지 민주와 정의를 앞세우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모두가 비민주적이었고, 비리의 온상이었다. 남의 잘못은 돋보기로 들여다보면서 자기들의 잘못은 망원경으로 보는 격이다.

요즘 언론 기고나 발표에서 4차 산업혁명을 4차 산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보면 놀랍다. 정보·의료·교육 서비스 등 지식집약형 산업을 4차 산업이라고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4차 산업혁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제대로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사례다.

근대철학에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라는 양대 산맥이 있다. 경험주의의 원조는 베이컨인데 그는 ‘경험을 통해 직접 관찰하고 실천하며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실생활에서 아는 것은 강력한 힘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모르면서 안다고 믿거나,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 발생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고(知不知尙矣),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다(不知不知病矣)”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엇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오죽하면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혜”라고 설파했겠는가?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세계에서 특별나게 한국인의 교육열이 높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사교육까지도 성행하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모르는 사실과 지식을 습득하고 암기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서는 선행학습을 강요하며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지식 암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소문난 천재 아인슈타인에게 한 기자가 기습적으로 ‘음속 값은 얼마인가’를 질문했는데, 이 천재 과학자는 재치 있는 답을 했다고 한다.

“저는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일부러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대답인가. 실생활에서는 꼭 담아둬야 하는 지식만 선별해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 점에서는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나 지식이 있는 곳을 아는 것”이라고 했던 새뮤얼 존슨의 충고가 새삼 유용하다. 나는 뭘 알고 있고 뭘 모르고 있는가, 내가 아는 것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신전에 씌어져 있던 말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이 말을 자주 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그가 한 명언으로 알고 있다. 그는 신에 비해 인간은 하찮은 존재고 그래서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깊어도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으며, 어떤 과학지식도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과학지식도 부단히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은 확실성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안다고 믿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비판, 거기서부터 새로운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과학적 사고이며 과학적 태도인 것이다.

며칠 전에 판문점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일 수 있는 남북미 세 정상이 만났다. 생중계를 보면서 느낀 바는 각자 다 달랐을 것이다. 누구는 미국 대선용이라 하고, 누구는 우리가 없는 그들만의 리그였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평화를 소망하는 계기를 새로 만들었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질문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요즘 인생 백세 시대를 맞아 지역사회의 노인들은 배움의 장소를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

늦깎이로 문학아카데미에 등록하여 수강하는가 하면, 노인복지회관 강좌에서 스마트폰 사용법과 컴퓨터 고급과정도 배우고 익힌다. 모르는 데서 앎이 생기고, 아는 데서 다시 모르는 것이 생겨나는 법이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듯이 인생도 마찬가지다. 일평생을 더불어 산 배우자의 생각조차 모르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돌아볼 일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