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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한국사 교과서권흥기(소설가, 본지논설위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7.11 16:48
  • 호수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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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생활에서 겪은 어려움 가운데에는 학습준비물이 빠지지 않는다. 형편이 빠듯한 집의 아이들이 학습준비물을 제대로 갖추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느 급우가 잘 살고 누가 어려운 집인가는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준비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옷차림이나 점심 도시락을 보아도 사는 품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는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학습준비물과 다르다.

선생님 앞에 보여 주어야하기 때문에 준비물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은 주눅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수업참여도 부실하다. 예컨대 미술시간이 되면 여유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책상 위에 새하얀 도화지와 알록달록한 크레용을 선뜻 올려놓는다.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도화지를 짓구겨 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금방이라도 요술을 부릴 듯 알록달록한 색깔을 지닌 크레용은 보기에도 탐이 나 가지고 싶지만 마음대로 될 일이 아니다. 교과마다 학습준비물이 다양하여 제대로 준비해 등교하기에는 형편상 버거운 아이들이 있었다.

학습준비물 못지않게 부담스러운 것이 또 하나 있다. 교육목표에 도달하는 커리큘럼의 핵심인 교과서이다. 요즘 초중학생들에게는 교과서가 무상으로 주어진다. 나라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누구나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일반 서적에 견주어 가격이 저렴하여 구입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귀퉁이가 날카로운 새 교과서에 그려진 표지화나 삽화는 훗날 어린 시절을 되새기게 하는 추억거리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넉넉한 것이 없었던 시절에 중고교 교과서를 갖추는 일 또한 간단하지 않았다. 병사에게 총이 생명이나 다름없듯 학생으로서 맨 먼저 구비해야 할 필수품이었지만 교과서를 지참하지 못한 급우들이 없지 않다. 과목에 따라서는 헌 책을 사용하여 받아가는 새 책의 권수도 저마다 달랐다. 높이 쌓인 새 책들을 안은 급우는 몹시도 부러운 모습이었다. 집안의 형이나 누나들이 사용하던 헌 교과서를 애써 구해 보지만 지은이가 달라 쓸모가 없는 수도 있다. 같은 교과서라고 해도 햇수가 지난 책은 내용이 수정되지 않아 수업 시간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수학 교과서는 숫자 하나, 도형 한 군데가 달라도 선생님의 설명을 새겨들어도 이해되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 되면 재빨리 친구의 교과서를 빌리기 위해 복도를 다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일쑤 본다. 백지도며 지리부도 같은 부차적인 교과서는 가격이 비싸 구입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백지도는 한번 그리고 나면 다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급우에게 빌려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난감하다. 교과서와 학습준비물이 아니라도 사변이 끝나고 십여년이 채 지나지 않은 궁핍한 시대였으므로 교과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던 같다.

한국사 교육이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이해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아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고활동은 대상에 대한 지식에서 출발한다. 사실적 사고 능력이 사고력의 기본이다. 알면 아는 만큼 의식이 깊어진다. 부모의 성장과정과 지나온 세월을 알 때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효심이 형성되는 것과 흡사하다. 사물이든 국가든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저 거기에 무심히 존재할 따름일 것이다.

주권을 상실한 과거가 있지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반만년을 이어 오늘날의 코리아, 대한민국을 모르는 나라가 없을 만큼 우리는 저력을 자랑한다. 이러한 영욕과 부침의 역사를 학습할 때 애국심이 함양된다. 무형의 애국심은 제 나라의 역사를 학습함으로써 형체가 영근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는 기억으로써 되살아난다.

지난 한 때, 고등학교에서 한국사 교육은 소외되었다.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력이 큰 소위 주요과목인 국어, 수학, 영어 등의 교과를 중시하고 한국사는 이수해야 할 주당 시수도 미미했다. 한국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교과에서 제외된 적도 있었다. 그나마 근현대사는 인문계열 고3 학생들의 선택과목이었다.

국사 교육이 새로이 중시되는 가운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사실상 폐기되었다. 한국사의 말 많던 집필 주체가 일단락된 셈이다. 검정제도의 시절, 일부의 한국사 교과서는 검정과정을 거칠 때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문장에 어법상 오류가 있고 오탈자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의미를 오해할 모호한 문장도 있었던 모양인데 사실이라면 교과서로서 기본적인 자격을 의심받게 마련이다. 저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사관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역사가 인문분야이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여지가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한다면 전혀 다른 기술이 나오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올바르게 기술된 교과서로써 학습하고 싶을 뿐 기성세대의 한국사 교과서 갈등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기억의 존재이다. 배우고 기억할 때 역사의식이 형성된다. 누구나 공감하는 소망스러운 한국사 교과서가 등장하여 학생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에 대해 자부심을 함양하기를 바란다. 역사의식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조건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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