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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 대학 보다 93년 앞선 대학 소수서원, 그 가치를 인정받다[특집] 한국 서원의 맏형, 소수서원
  • 오공환 기자
  • 승인 2019.07.22 12:01
  • 호수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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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교육기능 결합...350년 동안 4천여 명 배출
최근 중단됐던 강학기능 복원, 선비정신교육장 활용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의 교육과 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됐던 성리학의 증거라는 점을 높이 평가 받아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가운데 소수서원은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가운데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 Outstanding Universal Value), 진정성, 완전성, 보호 및 관리체계 등에서 가장 돋보이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 어떻게 세워졌나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37년인 1542년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우리나라 성리학(性理學)의 선구자 회헌(悔軒) 안향(安珦) 선생이 수학하던 순흥 숙수사 터에 사묘(祠廟.文成公廟)를 짓고 그 이듬해인 1543년(중종38년) 교육 장소로 ‘백운동(白雲洞)서원’을 세운데서 비롯됐다. 첫 입원유생을 3명이었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補)를 추가배향했다. 바로 이 백운동서원이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嚆矢)다.

백운동서원은 명종 5년인 1550년 명종임금이 직접 글씨를 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扁額)과 노비, 전답, 서적을 하사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다시 말해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으로써 미국의 하버드대학보다 93년이 앞선다. 당시 교육기관은 공립으로 향교와 성균관이 있었고 사립은 서당이 전부였다. 대학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은 성균관뿐이어서 당시로서는 소수서원의 ‘사액’은 파격 그 자체였다고 할수있다.

이을 소(紹), 닦을 수(修) ‘소수(紹修)’란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서 닦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나 명종의 명에 따라 소수서원이란 이름을 지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이 ‘백운동소수서원기’에서 ‘소수’라고 한 연유를 “학문을 하며 그 뜻을 밝히지 못하면 자신을 닦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며, 자신을 바로 닦지 못하면 행동을 바르게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소수(紹修)’에 단순히 무너진 학풍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를 넘어 학문과 수양을 통해 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인간의 참된 본성을 회복하자는 큰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 소수서원의 경

경내에는 강학당(보물 제1403호), 일신재 · 직방재, 학구재, 지락재, 장서각, 문성공묘(보물 제1402호)등이 있고,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등 중요유물과 각종 전적(典籍)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는 이곳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의 불교 유물이 남아 있다.

소수서원 앞 죽계천 바위에 신재 주세붕 선생이 쓴 것으로 전해오는 ‘白雲洞’과 ‘敬’자 바위가 있다. 신재 선생이 직접 써서 새긴 것으로 ‘신재집’이 밝혀주고 있다. ‘敬’자는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리글자다.

▲ 소수서원의 배치

소수서원은 이서위상(以西爲上)의 전통규례에 따라 동학서묘(東學西廟)의 건물배치로 서원 중심에 강학당(講學堂)을 두고 서쪽에 묘당(廟堂)인 문성공묘(文成公廟)를 두고 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9개 서원 중 유일하다. 소수서원 외 8개 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다.

문성공묘는 안향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대부분의 사당은 사당사(祠)자를 사용하나 왕과 제후 급에 해당되는 분의 위패를 모신 곳만은 사당묘 자의 묘호(廟號)를 쓴다.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른 것은 이례적이다. 따라서 문성공묘(文成公廟)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주자학을 도입한 회헌 안향선생을 국부(國父)로 기리고자하는 격을 높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사당문이 삼문(三門)이 아니라 단문(외문)인 것이 특이하다.

▲ 소수서원의 강학 기능

소수서원 강학당(보물 제1403호)은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곳이다. 강학당은 전조후침(前朝後寢)이라는 조정(朝庭)의 예를 따라 전청후실(前廳後室)의 특이한 구조이므로 현판 걸린 쪽이 앞이 된다. 강학당 건물은 배흘림기둥에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러놓고 있으며 내부에는 ‘백록동규’를 걸어뒀다. 이는 소수서원이 중국 백녹동서원(白鹿洞書院)을 본받았음을 알 수 있다. 강학당에는 이가순(퇴계 후손)이 원장 재임시(在任時)에 사물잠(四勿箴), 경재잠(敬齋箴), 심잠(心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등을 걸어두고 수시로 경독하고 암송했다. 소수서원 원생은 매년 30명 이내로 뽑되 지역제한 없이 골고루 뽑아 가르쳤다고 한다.

소수서원의 건물로 강학당 뒤 서편으로는 서책을 보관하던 장서각(藏書閣)이 있다. 장서각은 서책은 좌우지선(座右之先)의 예를 따라 으뜸자리에 둔다고 스승의 숙소(직방재·일신재) 우측에 뒀다. 장서각 우측으로 소수서원의 원장과 교수 제임(諸任) 등이 함께 기거 하던 집무실 겸 숙소인 직방재(直方齋)와 일신재(日新齋)가 있고 그 옆으로 유생들의 숙소인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가 있다. 요즈음으로 치면 학생 기숙사이다.

학구재와 지락재는 학문의 숫자인 3을 상징하여 세 칸으로 꾸몄고 공부 잘하라는 뜻으로 건물 입면(立面)이 한자 ‘工’자형으로 지어져 있다. 소수서원에서는 스승의 숙소를 오른쪽에 짓고 제자의 숙소를 왼쪽에 지으면서 나란히 짓지 않고 스승의 그림자까지 피한다고 해서 두 칸 물러지었으며 방 높이도 스승의 숙소보다 한자 낮춰 지었다.

▲ 소수서원의 제향 기능

소수서원 내에는 제향(祭享) 때 제관들이 손을 씻던 관세대(冠洗臺)와 서원에 스승과 제자들이 밤 나들이를 하거나 서원에 밤 행사가 있을 때 관솔불을 켜 놓았던 돌기둥인 정료대(庭燎臺),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재던 일종의 해시계인 일영대(日影臺)가 있다. 소수서원 내 문성공묘(文成公廟) 뒤편에는 전사청(典祀廳)과 영전각(影殿閣)이 있다. 영전각에는 회헌 안향 선생을 비롯해 신재 주세붕 선생, 오리 이원익, 한음 이덕형, 미수 허목 선생의 초상과 주자(朱子)초상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소수서원 입구(매표소)를 지나면 소나무 군락지인 솔밭과 당간지주, 은행나무가 있고 소수서원 홍살문 앞 오른쪽에는 경렴정(景濂亭), 왼편에는 성생단(省牲壇)이 있다. 경렴정은 주세붕 선생이 세운 정자인데 우리나라 서원 정자로는 가장 오래됐다. 현판 이름은 중국 북송의 철학자 ‘렴계 주돈이’를 경모하는 뜻에서 주돈이의 호인 ‘염계’의 첫 글자 ‘濂’자를 땄고 회헌 안향 선생을 높이는 뜻에서 ‘景’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성생단은 문성공 회헌 안향선생의 사당에 매년 봄·가을(음력3월, 9월) 초정일(初丁日)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의 흠결을 보던 곳이다.

경렴정 옆으로 죽계천이 흐르고 ‘白雲洞’과 ‘敬’자 바위가 있다. 죽계천 건너편에는 취한대(翠寒臺)가 있다. 취한대는 퇴계 이황선생이 대를 세웠으나 오랜 세월에 무너져 터를 다시 닦아 정자를 세웠다. ‘취한’이란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비취 취(翠)자와 차가울 한(寒)자를 따온 것이다. 소수서원은 유생의 학적부인 입원록(入院錄)이 남아 있다. 1888년(고종 25) 마지막으로 입학 때까지 350년 동안 4천 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출신 지역은 영주 인근뿐만 아니라 한양을 비롯해 팔도를 망라하고 있다. 입원록에 이름을 남긴 인물은 학봉 김성일, 약포 정탁(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구명), 초간 권문해(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저술), 월천 조목, 성재 금난수, 격암 남사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퇴계의 이름난 제자들이 특히 많다.

▲ 소수서원의 오늘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서원은 전국에 600여 개가 넘었다. 소수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의 폐단을 막기 위해 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전국 47개의 서원 중 하나다. 1962년 사적 제55호로 지정받았다.

영주시는 소수서원 뒤에 2004년 1만 8천여평의 선비촌을 조성해 기와집 15채와 초가집 13채, 정자1채 등이 들어서 있다. 또 선비촌에는 소수서원 선비들이 학문을 탐구하던 강학당과 서당도 재현해 놓았다. 또, 선비촌과 함께 개관한 1천여 평의 소수박물관에는 명종임금 친필 소수서원 현판. 안향선생 영정 등 소수서원 유물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소수서원에는 매년 약 25만명 내외의 관람객(유료입장객)이 다녀가는데 ‘선비촌‘과 ‘소수박물관’을 ‘소수서원’과 함께 ‘순흥문화유적권’으로 묶어 입장료 3천원(영주시민은 1천500원)을 받고 있다. 한동안 제향기능만 유지하던 소수서원에서의 교육적 역할은 인근에 선비촌이 조성되면서 자체 기획한 선비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대신했지만 최근에는 소수서원 학맥 계승 사마(司馬)선비과정을 운영하는 등 강학기능을 복원했다.

또, 선비촌 옆으로 2009년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 들어서면서 초·중·고 학생들의 ‘선비문화체험’, ‘청소년 인성교실’ 뿐 아니라 ‘전국유림지도자대회’, ‘여성유도회 전국대회’등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소수서원에서의 교육기능을 대신하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소수서원, 선비촌,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은 ‘추노’, ‘공주의 남자’ 등 사극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오공환 기자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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