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사이에서

- 박형권

담장과 길이 만나는 사이라는 곳

거기에 먼지가 쌓이는 걸 어떻게 아는지

지칭개 씨앗은

사이로 향한다

쓸어내고 쓸어내도 여한이 남는 곳

가령 못난 사내가

아내에게 쏟아 부은 욕설이 쌓이는 곳

신발의 잡념이 더 갈 곳을 몰라 하는 곳

기대어 토하는 곳

사랑과 치사함이 떠밀려서

거름이 되는 곳

거기를 지칭개 씨앗은 어떻게 아는지

잎을 낸다

사이는 어쩌면 틈바구니라는 말

치이고 차이고 억눌리는 국어사전의 변두리

머리카락과 손톱이 숨는 곳

아가, 서울에서는 틈바구니를 찾아가라

그래야 꽃이 된다

그 말씀을 어디에서 들었을까

담장과 길이 만나는 사이를

이제 평원이라 부르지만 다 허튼소리

구걸해보지 않고 욕망 해보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는 모르는 곳

담장과 길이 만나는 곳

생존의 피투성이에서 지칭개가 먹고 자는 곳

예쁜 종아리를 씩씩하게 내고

출근하는 젊은 여자들이 립스틱을 바르는 사이

때로는 그렇게도 빛나는 틈바구니

지칭개와 나 사이에

공개된 비밀이 자란다

누가 더 오래 사나 해보자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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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럭과 보도블럭 사이, 작은 틈에 비단풀이 한여름 뜨거운 태양아래 쌀알보다 작은 잎을 피워놓고 납작 엎드려 빨갛게 타고 있거나 이른 봄 건물과 시멘트 길이 만나는 직각의 공간 바람이 싣고 온 먼지가 쌓여 생긴 곳 (바람이 만들어준 기회의 땅이라고 부르자)에 민들레라든가 제비꽃 씨가 숨어들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것을 보면 감탄과 동시에 측은지심이 인다. 바위틈에 발을 재겨딛고 선 소나무라든가 부석사 조사당 처마에서 이슬 받아먹고 사는 골담초를 보면 경이로움과 동시에 척박한 삶이 동시에 읽혀져 혀부터 차게 된다. 시인의 눈길이 마침내 거기에 닿았음을 안다. 잎을 내고 기어이 꽃을 피우고 마는 지칭게를 보면서 생존을 위한 고단함을 짐작한다. 이는 시인의 동정이 아니라 감정이입(感情移入) 또는 공감(共感)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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