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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봉의 문화읽기[191] 광장(廣場)최대봉(작가)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7.05 17:15
  • 호수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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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청초

‘저 넓은 광장 한 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이네/ 벤조 줄을 울리면서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 이 가사를 읽는 순간 금방 그 멜로디가 읊조려지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 또한 초등학교 시절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었다. 미국의 그룹 The Village Stompers의 <워싱턴 광장(Washing Square)>을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 걸 그룹 이씨스터즈가 번안해 부른 노래였다.

그 시절 우리에게 광장은 다소 생소한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대륙진출과 우리 물산의 수탈을 위해 철도를 놓고, 역사(驛舍)를 짓고, 그 앞에 작은 광장을 만들었다. 국어 선생님들이 ‘전(前)’과 ‘앞’이 같은 뜻이므로 어의(語意)가 겹쳐서는 안 된다며 ‘역전 앞 광장’이라는 말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던 그 광장은 수탈한 물건들을 적재할 공간으로 만들어졌을 뿐,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거나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의 마당이 되거나 토론의 장이 열리는 광장의 기능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거나 모여드는 넓은 공간 모퉁이에서 쓸쓸한 사나이가 벤조 줄을 퉁기면서 노래를 하기도 하는 그런 광장이 우리에게는 없었다는 얘기다.

유럽의 문화는 광장의 문화였고 유럽의 역사는 광장의 역사였다. 그들은 도시를 만들고 모든 길들이 그곳으로 통해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광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류사의 흐름을 바꾸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가장 오래된 광장의 형태는 그리스의 아고라(agora)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거나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웅변가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토로하기도 해 경제와 문화, 정치를 자연스럽게 아우르는 공간이었다. BC 6세기까지 아테네는 참주(僭主)들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영어의 ‘tyranny(독재정치)’나 ‘tyrant(폭군, 독재자)’라는 말이 참주를 뜻하는 그리스 말 ‘tyrannos’에서 유래했다는 데서 그 정치체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가 솔론은 아고라에 모여든 아테네 시민들에게 시(詩) 낭송과 웅변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으며 채무로 인해 노예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무역과 상공업을 발전시키는 개혁을 단행했다. 인류최초의 민주주의의 꽃이 아고라에서 피어난 것이다.

아고라의 전통은 로마의 ‘포로 로마노(Foro Romanno)’로 이어진다.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그 말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광장은 로마인들의 생활의 중심이었고 로마 공화정이 태동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정복한 도시들을 통해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로 퍼져나가 광장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공개토론이나 그 장(場)을 뜻하는 ‘포럼(forum)’은 로마의 광장 ‘포룸(forum)’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귀족들의 손에 암살당한 후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제정(帝政)시대로 바뀌면서 로마공화정의 전통이 사라지고 왕과 황제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1700년이나 지속된다. 민주주의의 불꽃이 되살아난 곳은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이었다.

인류사의 물줄기를 요즘 하는 말로 ‘비가역적(非可逆的)’으로 바꿔놓은 프랑스혁명(1789)의 중심에 콩코르드 광장이 있었다. 시민군들은 죽음을 무릅쓴 시가전을 벌이며 그 광장으로 집결해 ‘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을 흔들었다. 전제군주 루이 15세가 자신의 기마상(騎馬像)을 세우기 위해 만들었던 그 광장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는 그 광장에서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그 사건으로 ‘앙시엥 레짐(ancien regime, 구(舊)체제)’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광장에서 꾸었던 꿈은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1917년 레닌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10월 혁명’을 통해 인류최초의 공산국가를 세웠지만 70년 뒤 체코의 바실라프 광장과 루마니아의 부끄레슈티 광장, 그리고 튀니지의 벤 알리 광장에서는 공산독재 체제가 시민들의 힘에 의해 무너졌다.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는 정치적 자유를 외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정권의 야만적인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광장은 희망과 좌절의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충무공의 동상이 지켜보는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와 한 보수단체가 벌이고 있는 해괴한 천막 싸움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은 세월 호 천막과의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어느 쪽이나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그 광장에서 꽃피운 촛불혁명의 민의(民意)를 다시 새겨보아야 한다. 프랑스혁명의 광장 ‘콩코르드(Concorde)’는 ‘화합’이라는 뜻이다. 촛불정부로 자처하는 현 정권은 잊어서는 안 된다. 광장은 소통과 화합의 공간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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