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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선녀가 놀다간 가마바우 밑에 있다하여 ‘바우실’우리마을탐방[253] 장수면 파지리 바우실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7.03 15:25
  • 호수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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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때 순흥부의 월경지 대룡산면에 속했고
일제 때 안정면 파지리-1983년 장수면 파지리

바우실 전경

장수면 파지리 가는 길
장수면 파지리 바우실은 장수면 갈산2리 바우실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장수면 소재지에서 출발하여 영주IC사거리를 지나 예천방향으로 100m쯤 직진하여 갈산·성곡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500m쯤 가다가 삼거리에서 갈산2리·파지리(바우실) 방향으로 다시 우회전한다. 여기서 1.5km쯤 직진하여 중앙고속도 지하차도를 통과하면 파지리 바우실이다.

지난 14일 바우실에 갔다. 이날 파지리 경로당에서 오세길 이장, 송원영 노인회장, 박승대 노인회총무, 석창섭 지도자, 권옥란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파지리 마을회관

역사 속의 파지리
파지리 지역은 조선 태종13년(1413년)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의 월경지 대룡산면(大龍山面)에 속했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전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 대룡산면이 풍기군(풍基郡)으로 이관되면서 풍기군 용산면(龍山面) 파지리(芭芝里)가 됐다.

파지는 용산면에 속한 작은 마을이었으나 조선 후기 인구 증가로 ‘파지리’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을 갖게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옛영주), 순흥군, 풍기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고, 풍기군의 용산면, 생현면, 동촌면이 안정면으로 동합될 때 영주군 안정면 파지리가 됐다. 1980년 영주시 승격으로 영풍군으로 분리되어 영풍군 안정면 파지리가 됐다가 1983년 장수면 파지리로 이관 됐다. 그 후 1995년 통합 영주시 장수면 파지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마바우

가마바우의 유래
파지리는 속칭 ‘바우실’이라 부른다. 송원영 노인회장께 바우실의 유래를 여쭈었다.

송 회장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가마봉에 큰 바우가 있다. 전설에 선녀가 가마타고 내려와 이 바우 위에서 놀다갔다 하여 ‘가마바우’라 부르게 됐다”며 “예전에 이곳 선비들이 가마바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바우실’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가마바우가 어디에 있냐?”고 여쭈니 박승대 총무가 “내가 안내할 테니 가보자”고 했다.

가마바우로 향했다. 용암산 방향으로 1km쯤 올라가다가 좌측방향 바우골로 접어들었다.

산은 수목이 우거져 길이 없다. 박 총무가 낫과 톱으로 수풀을 물리치면서 길을 열었다. 해발 261m 정상 가마봉에 올랐다. 가마바우는 높이 4-6m, 지름 3-7m가량 되어 보이는 집채크기만한 바우다. 동쪽에서 보면 가마를 닮은 듯하고, 서쪽에서 보면 고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박 총무가 먼저 바우에 올라 기자를 당겨 올렸다. 바우 위는 타원형으로 어른 30여명이 둘러앉아 놀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동서남북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멀리 용산리 보이고, 가까이 고속도로 영주휴게소가 보인다. 박 총무는 “40여 년 전 화전놀이를 할 때 일부는 바우 위에 올라가고 일부는 바로 앞에 있는 ‘마당바우’에서 놀았다”고 말했다.

파지(芭芝)의 전설과 유래
예전에 중국의 한 학사(學士)가 졸다가 꿈속에 초(蕉)라는 미인을 만났다. 너무나 아름다워 치맛자락을 잡아끌다 치맛자락이 찢어지는 바람에 잠이 깼다. 잠에서 깬 학사의 손에는 치맛자락은 온데간데없고 찢어진 파초 잎만 쥐어져 있었다.

학사는 꿈에서 본 미녀가 파초(芭蕉)의 영(靈)이라 생각하며 허무해 했다.

이 이야기는 애정에 대한 세속적 욕망은 허무하니 잡념을 버리고, 학문에만 정진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파지리 바우실은 400여 년 전 우계이씨, 전주이씨, 안동권씨, 강릉최씨 순으로 입향하여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당시 이 마을 선비들이 가학과 서당교육을 통해 학문을 장려할 때 중국 고서(古書)에 나오는 파초(芭蕉)의 전설에서 파(芭)자를 따고, 이곳 도랑가에 지초가 무성하니 지초(芝草)에서 지(芝)자를 따 ‘파지리(芭芝里)’라 이름 지었다 한다.

마주보는 두 바우실
장수면에는 파지리 바우실과 갈산2리 바우실이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표석에도 「파지리 바우실·갈산2리 바우실」이라고 새겼다.

이 마을 이건중(73) 씨는 “마주보는 갈산2리 바우실은 산세(山勢)가 베틀의 바디처럼 생겼다 하여 ‘바디실’이라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바우실로 변했고, 우리 마을은 가마바우에서 유래하여 바우실이 됐다”며 “조선 때 행정구역상 갈산리 바우실은 영천군 두전면에 속했고, 파지리 바우실은 순흥부 용산면에 속했다. 오랜 세월 두 바우실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지명이 준 인연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 파지에서 장수 파지로
파지리는 파란만장한 행정구역 변천사를 가진 마을이다. 조선 때는 순흥부의 월경지 대용산면에 속했고, 조선말에는 풍기군 용산면에 속했다. 일제 때 안정면 파지리가 되었다가 1983년 장수면 파지리로 이관(移管) 됐다. 송원영 노인회장은 “1980년대 당시 권영제 새마을지도자가 각계각층에 청원를 내 안정면 파지리에서 장수면 파지리로 이관했다”고 말했다.

권영제(81,현 서울거주) 어르신은 “1980년대 들어 교통이 발달했다. 파지에서 용산으로 돌아 안정-영주로 가는 길과 장수를 거쳐 영주로 가는 길을 비교할 때 2배 차이가 났다”며 “당시 영풍군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경북도, 청와대까지 청원하여 장수면으로 이관됐다.

마을사람들은 면사무소와 농협 등이 가까워져서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석창섭(69) 새마을지도자는 “파지리의 농업은 벼농사와 수박, 약초 재배를 많이 한다”며 “농업 업무가 면·농협과 연계하기 때문에 장수면으로 이관되어 많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동수나무(洞神)
500년 수령 명품소나무
농업용수로

500년 수령 동수나무
파지리 초입 야산자락에 500년 수령 동수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박승대 총무는 소나무를 한아름 안아보면서 “현재 우리고장에 있는 소나무 중 가장 오래되고 둘레가 두 아름쯤 되는 명품 소나무”라며 “해마다 정월보름날 동신(洞神,소나무)을 모시는 동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이성도(75) 씨는 동제(洞祭)에 대해 “정월보름날 자시(子時)에 헌관과 축관 두 사람이 동제를 지낸다. 제물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해물, 백설기, 3실과 등을 진설하고 헌관이 잔을 올리면 축관이 독축했다. 날이 밝으면 마을사람들이 도가(都家)에 모여 음복을 나누고, 마당에서 징, 장구를 치며 윷을 놀았다”고 말했다. 동수나무 앞으로 새로 난 수로에 물이 졸졸 흐른다. 박 총무는 “성곡저수지 물이 산을 뚫고 내려와 파지리-갈산2리-화기1리-소룡리로 내려가면서 농업용수를 공급한다”고 말했다.

이복희, 김순녀, 안태희 씨
김영자, 김청옥, 박찬남 씨
이순자, 최용숙, 윤필화 씨
바우실 사람들

바우실 사람들
기자가 박 총무와 가마바우에 올라갔다가 다시 회관으로 돌아왔다. 회관이 시끌벅적하다. 다과상이 차려지고 흥겨운 노랫가락도 흘러나온다.

윤연화(93) 할머니가 “이 마을 아들 딸네들이 고향에 오면 먼저 회관에 와서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간다”면서 “오늘도 용산댁네 딸이 왔다가더니 잔칫상이 차려진 것 같다”고 했다.

권옥란(69) 부녀회장은 “경로당은 늘 북적이고 먹거리도 많다”면서 “바우실 할머니들은 4계절 윷놀이를 많이 하는 게 특징이다. 윷을 놀다보면 앉았다 일어났다 운동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랫가락을 좋아하는 전봉의(94) 할머니는 “예전에 새댁시설 가마바우에 올라 화전놀이를 했다”면서 “집집마다 음식을 준비하기도 하고 단체로 장만하기도 했다. 화전(花煎)은 산에서 직접 붙여서 먹었는데 한 잔 먹고 신나게 춤추고 놀다 내려왔다”고 했다.

송필우(94) 할머니는 “예전에 전의이씨, 전주이씨, 안동권씨, 강릉최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 때는 60여 호에 300명이 넘게 살았다”며 “그 때는 갓 쓴 선비가 많았고, 집집마다 글 읽는 소리가 골목까지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이성도(75,전주인) 씨는 “저의 집안(전주이씨 완창대군파)이 언제부터 여기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영(先塋)에 고조부님(그 윗대는 잘 모름)부터 대대로 묘소가 있는 것으로 봐서 200년 이상 세거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저의 조부님이 살아계실 때까지만 해도 사랑방 서당(家學)을 열어 천자문, 명심보감 등 한문의 기초를 가르치셨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오세길 이장
송원영 노인회장
박승대 노인회총무
석창섭 새마을지도자
권옥란 부녀회장
윤연화 할머니
전봉의 할머니
송필우 할머니
이성도 씨
이건중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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