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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보통 사람들이 사는 동네김영애(수필가, 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6.07 16:14
  • 호수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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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이 주택지로 변한 곳에 오래된 골목이 있다. 집집마다 자라던 아이들은 다 객지로 떠나고 경로연세의 노인들만 살고 있어 늘 조용하다. 그 골목엔 어림잡아 오십 년은 됨직한 낡은 기와집 두 채가 아직도 처음 모습으로 골목을 지키고 있다. 논에 도로가 생기고 처음 지어진 집들이다.

그 중 한 채가 지붕을 벗고 새로 기와를 올린다. 너무 오래되어 빗물이 새나보다. 연장을 실은 트럭이 다니고 인부들이 오가며 조용하던 골목이 떠들썩해지고 생기가 돌았다.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헌 집을 쳐다보며 관심을 보였다. 건너편에 있는 오래된 기와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관심이 제일 컸다. 이 할머니는 자기가 지은 집에 여태 살고 있으니 동네에서 터줏대감이다. 대문문설주가 낡아서 걱정거리였다. 잠시 쉬고 있는 인부에게 찬물을 대접하면서 자기네 문설주 흉을 보았다. 공사를 마친 인부가 쓰다 남은 재료로 할머니의 걱정을 말끔하게 처리해 주고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마주 보던 할머니의 집이 또 지붕을 벗었다. 다시 골목에 연장을 실은 트럭이 서고 인부들이 소리를 내며 골목에 활기가 넘쳤다. 주민들이 또 드나들며 새 집이 되어가는 낡은 기와집을 쳐다본다. 할머니의 앞집 앞집에는 사십여 년 된 모과나무 한 그루가 담 너머로 잎의 세를 과시하며 자라고 있다.

혹시 지나다니는 높은 차에 방해가 될까 해마다 이때쯤이면 전지를 하는데 마침 이날 날을 잡았다. 의자에 올라서서 가지치기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의 고맙다는 목소리가 골목을 메운다. 이 위험한 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언제 보았는지 지붕공사를 하던 인부가 자기 사다리를 메고 와서 우선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이 인부는 사흘 전에 뒷집 할머니의 대문문설주를 무료로 고쳐주고 떠난 인부였다. 오래되고 낡기는 마찬가지여서 비가 새기 전에 미리 손을 본다며 이왕 손 볼 거면 고마운 사람에게 하는 거라며 다시 이 인부를 불렀다는 것이다.

작업 중에 생각지도 않은 사다리를 빌려 받은 할아버지도 이 분이 너무 고마웠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사과 주스를 대여섯 봉지 들고 가서 작업하는 인부들에게 건네주었다. 발갛게 맨살을 들어 낸 지붕위에 올라앉은 인부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는 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저녁때쯤 할아버지는 사다리를 트럭에 올려놓았다.

잘 썼다는 인사를 서너 번은 하는 것 같다. 이틀간 골목에 생기가 돈 후 두 집의 지붕만 바꾸었을 뿐인데도 동네가 분칠한 시골아낙들처럼 예쁘다.

공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는데 모과나무집 할아버지네 집에 초인종이 길게 울렸다. 대문이 열리자 사다리가 먼저 대문 안으로 쑥 들어왔다. 사정을 모르는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무슨 영문인지 묻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기만 하는데 며칠 전 사과음료수를 한 봉지 마신 인부가 성큼성큼 들어와 사다리를 담장에 턱 기대놓고

“여기 두고 쓰라 카소. 아이 참, 이번에 일하는데 동네를 하도 잘 만나서 …….”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나가 버린다. 일 년에 한 번은 사다리를 빌리러 다니거나 며칠 전처럼 그냥 하늘을 쳐다보며 가지를 쳐내던 할아버지 집에 반짝거리는 사다리가 하나 생겼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요즘 우리가 뽑은 선량(選良)들의 말 때문에 텔레비전 보기가 겁난다. 말에 흙이 묻을세라 상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총알을 품고 칼을 품고 화살보다 빠르게 상대를 향해 날아간다. 내 탓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모두 네 탓이라고만 한다. 내말은 듣고 너는 입을 다물라한다. 누가 더 자극적인 말로 상대를 제압하느냐. 오로지 그것이 자기네들의 실력인줄 안다.

말이 말을 물고 늘어지는 사연을 듣다보면 이쪽도 저쪽도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어지고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막말의 퍼레이드 같은 말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을 차려보면 진정으로 이 보통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헷갈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어쩌랴.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민초들이 늘 하던 대로 먼지 나는 골목에서도 이웃집의 새 지붕을 내 것인 냥 고대하며 참고 밀어주고 다독거리며 살아가다보면 정국(政局)도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잠잠해지고 마침내 새로워지겠지.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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