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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봉의 문화읽기[187]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최대봉(작가)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6.07 16:11
  • 호수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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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청초>

전쟁의 포연(砲煙)이 걷히고 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한명희라는 한 초급장교가 강원도 화천의 백암산 기슭, 우거진 잡초 사이에서 허물어져가는 돌무덤을 발견했다.

근처에는 녹 쓴 철모가 이끼에 덮여 뒹굴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무 비(碑)가 홀로 세월을 견디고 서 있었다.

무정한 조국의 산하에 버려진 그 이름 모를 병사의 고적한 죽음의 자리를 보고 그가 쓴 시(詩)가 장일남의 곡(曲)을 만나 우리에게 <비목(碑木)>이라는 노래로 알려지게 되었다. ‘초연(硝煙)이 슬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碑木)이여/ 먼 고향 초동(樵童) 친구 두고 온 하늘 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또다시 유월이 오고 현충일을 맞았다. 유월이 오면 잊었던 전쟁의 상처들이 아프게 되살아난다. 그들은 하필이면, 왜, 이렇게도 아름답고 푸르른 계절에 전쟁을 시작했을까? 대개의 전쟁을 부추기는 것은 낙관(樂觀)이다. (1차 세계대전은 참 이상한 전쟁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은 친지들과 연인의 환송을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전선으로 떠났다.

전쟁은 일주일 정도면 끝날 거고 전쟁이 끝나면 그들에게 보다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은 4년이나 지속되면서 600만 명이라는 전사자를 낳고서야 끝났다.)

북쪽의 전쟁지휘부는 보릿고개가 끝나는 유월에 밀고 내려가 보급품 걱정 없이 구월이면 너끈하게 끝낼 수 있다는 낙관에서 그 전쟁을 시작했지만 꼬박 3년 하고도 1개월에 걸친 원한과 복수의 날들과 250만의 죽음과 20만의 미망인과 10만의 전쟁고아와 1천만의 이산가족을 낳은 비극적 사변(事變)을 초래했을 뿐이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그 전쟁을 미화하고 있지만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말했다. “전쟁에서 아름답고 그럴싸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무 의미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미국은 오월 마지막 월요일을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로 기념하고 있다. 그 날을 ‘데커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로 부르기도 한다. ‘데커레이트(decorate)’라는 말에는 ‘훈장을 추서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장식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나라를 위해 죽은 병사들의 무덤을 꽃으로 장식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밥 딜런과 조앤 바에즈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피트 시거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우리 민요 <아리랑>을 최초로 부른 포크 가수로도 유명하다. 그가 전쟁 중에 의정부 지역에서 미군으로 참전했다가 아리랑을 듣게 되었다는 일설도 있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확인해볼 도리는 없다) 피트 시거는 196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 미하일 숄라호프의 장편소설 『고요한 돈 강』에 나오는 코사크 민요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율 부리너가 나오는 옛날 영화 『대장 부리바(1973)』에도 등장하는 코사크 족은 주로 중앙아시아지역에 흩어져 살던 칭기즈칸의 후예들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들을 야만인으로 무시했지만 말 잘 타고 싸움 잘하는 코사크의 젊은이들을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내보내기 일쑤였다.

이유도 모르면서 전쟁터로 내몰리며 그들이 부른, ‘꽃들은 소녀들이 꺾고 소녀들은 젊은 남자들 품으로 가고 그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죽고 그들의 무덤은 다시 꽃으로 덮인다’는, 인생유전(人生流轉)의 비극적 순환을 말해주는 그 민요에 요즘 말로, 필이 꽂힌 것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노래가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었다.

왜, 전쟁을 조직하고 시작하는 것은 높은 자리에 앉은 어른들이고 희망 없이 전장(戰場)으로 내몰려야 하는 것은 늘 젊은이들의 몫일까?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에서 노래한다. ‘How many times must cannon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얼마나 더 많은 포탄들이 날아다녀야/ 포성이 그칠 것인가?)/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걸 알게 될까?)’라고 묻고 있다. 이렇듯 반전(反戰)을 외치는 노래들은 왜 질문으로 끝날 뿐인가? 아마도 그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거나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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