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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진 선비가 숨어 살던 마을 일원(逸園)-일언(逸彦)우리마을탐방[249] 안정면 일원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5.30 17:45
  • 호수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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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거일민(擧逸民)에서 유래하여 ‘일원리(逸園里)’
조선 때 일원리(닥밭)·입암리(선바위), 일제 때 통합

선바위 마을전경
닥밭 일원리 전경
추억의 안정역
안정역 관사
일원리 경로당

안정면 일원리 가는 길
영주에서 안정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비행장 중간쯤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일원리다. 서천교 건너 서부사거리에서 창진리 방향으로 간다.

창진리 부녀회슈퍼 앞 삼거리에서 왼쪽 안정역 방향으로 2km쯤 가다보면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선바위(立巖) 일원리이고, 1.3km가량 더 올라가면 닥밭((楮田) 일원리가 나온다. 지난 20일 일원리에 갔다. 이날 일원리경로당에서 김원식 이장, 이수호 노인회장, 김진구 전 노인회장, 김분영 노인회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일원리
안정면 일원리 지역은 조선 때 풍기군(豊基郡) 동촌면(東村面)에 속해 있었다. 풍기는 통일신라 때 기목진(基木鎭)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초 1413년(태종13년) 기천현(基川縣)이 됐다가 1450년 풍기군으로 승격됐다. 170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일원리 지역은 동촌면 일원리(逸園里,닥밭)와 입암리(立巖里,선바위)로 각각 다른 행정구역이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행정구역 개편 때 일원리는 일언동(逸彦洞)으로 개칭되고, 입암리는 입암동(立巖洞)으로 바뀌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고, 풍기군에 속해있던 동촌면, 생현면, 용산면을 통합하여 새로운 안정면(安定面)을 탄생시켰다. 이 때 일언리와 입암리를 합쳐 ‘일원리’라 하고 안정면에 편입시켰다. 이후 1980년 영풍군 안정면 일원리, 1995년 영주시 안정면 일원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낭숲과 선바위
일원리 표석

지명유래
조선 중기에 편찬된 풍기군지에 보면 동촌면에 일원리(逸園里)와 입암리(立巖里)가 나온다. 당시 일원리는 현 닥밭마을이고 입암리는 선바위 마을을 말한다. 여기서 입암(立巖)의 유래는 알듯하나 일원(逸園)의 유래가 궁금하여 김진구(82,숭은전보존회장) 어르신께 여쭈었다. 김 어르신은 “일원리의 일원(逸園)은 ‘논어 興滅國(흥멸국), 繼絶世(계절세), 擧逸民(거일민), 天下之民歸心焉(천하지민귀심언).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고, 버려진 인재를 등용하니, 천하 백성의 마음이 귀의했다’라는 구절 속 ‘거일민(擧逸民)’에서 일(逸)자를 따 일원리(逸園里)라 칭했다”면서 “일민(逸民)이란 은둔해 있는 어진 선비란 뜻이므로, 일원리는 ‘은둔해 있는 어진 선비가 사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어르신은 또 “일원리는 조선말(1896) 일언리(逸彦里)로 개칭된다. 일언(逸彦)은 숨을 일(逸)자에 선비 언(彦)자로 ‘숨은 선비가 사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말했다. 안정면의 안정(安定)은 옛 풍기의 별칭 안정(安定)에서 따왔다. 또 일원리를 ‘닥밭’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닥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저전(楮田)이라 쓴다.

마을의 상징 선바위

동신이 된 선바위(立巖)
마을 앞 냇가에 마을의 상징 선바위가 있다. 가로 250, 세로 480, 높이 250cm 산(山)자 모양 바위이다. 그 옆 바위를 지키는 버드나무 한 그루는 푸르름이 넘실거리고, 고목이 된 아카시아는 꽃이 만발하여 장관이다. 안내판에 「이 선돌은 선사시대 자연석으로 1783년경 우계이씨 일족이 입향하면서부터 동신으로 모셔온 신령한 바위이다.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자시(子時)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고 썼다. 이수호(76) 노인회장은 “동제 제관으로 선정되면 두 부부가 목욕재계하고 의관정재한 후 동신에게 치성(致誠)을 드리고, 각 가정의 소원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며 “보름날 낮에는 동민들이 회관에 다모여 음복을 먹으면서 덕담을 나누고 윷을 논다”고 말했다.

선바위 마을 우계이씨
선바위(立巖)는 일원리의 중심이면서 큰 마을이다. 조선 영조 때 우계이씨 일족이 처음 입향했다고 한다. 우계이씨(시조:陽植)가 영주에 터 잡은 것은 고려 충신 이억(李억)에서부터 비롯됐다. 이억의 현손 수형(秀亨,1435-1528)은 단종 절신(節臣)으로 1456년 순흥부 도촌(桃村)에 터를 잡았고, 수형의 아들 양근(養根,세조연간출생)이 도촌에서 영주 보름골로 살림을 나 망동파조(望洞派祖)가 됐다. 선바우 우계이씨는 양근의 후손 의복(宜福,1763生,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이 1783년경 망동에서 선바위로 분가하여 입암 입향조가 됐다.

이 마을 김진구 어르신은 “우계이씨 입향조 의복의 아들 문철(文喆,1721生)은 증가선대부호조참판에 올랐고, 손자 병수(秉洙,1807生)는 증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에 오르는 등 당대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일원리(닥밭) 경주최씨
일원리는 앞에서 밝혔듯이 ‘어진 선비가 숨어 살던 곳’이란 뜻이다. 어떤 선비가 살았는지는 전하지 않으나 아마도 정축지변(1457) 때나 그 후 여러 사화(士禍)에 연루되어 은둔한 선비들이 우거(寓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일원리에는 경주최씨 8호가 살고 있다. 경주최씨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일원리의 경주최씨는 1626년 이산면 용상리에 입향한 사후(士厚,18世,1583-1637,監役公派祖)의 후손이다. 사후의 9세손 영벽(榮벽,1788生)이 용상에서 살림을 나 1808년경 일원리에 터를 잡았다.

이 마을에 사는 후손 최병두(79)씨는 “저의 고조부 영벽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입향하신 후 증조부(만기만基,1838生)-조부(종찬鍾燦,1881生)-부(중락中洛,1919生)로 이어져 210여 년간 세거해 왔다. 저의 선대 이전에는 세속을 피해 온 선비들이 숨어 살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 곳은 큰골 안쪽 현 햇살자리 근처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모내기

모내기가 한창
우리고장 농촌의 모습이 대부분 과수원, 비닐하우스, 특용작물 등으로 바뀌었지만 일원리 들판은 옛 모습 그대로 모내기가 한창이다. 안정역 인근에서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는 김원식(63) 이장을 만났다. 김 이장은 “우리마을은 지금도 벼농사가 제일 많은 편이고 축산도 몇 집 있다”며 “선바위에 40여호, 닥밭에 12호, 철도관사에 6가구 외딴집 등 60여 가구에 100여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고, 학생은 없다”고 했다.

박승수(81) 어르신은 “일원리 선바위 마을은 지금 모내기로 한창 바쁜 때”라며 “우리 마을의 자랑은 봄부터 가을까지 모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가을에 황금물결은 볼만하다”고 말했다.

일원리 사람들
최병두 씨
식숙자 씨
우길자 씨
신옥자 씨
김옥자 씨

일원리 사람들
일원리 마을회관을 찾아가던 중 길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인사를 드렸다. 알고 보니 이수호(부인:신숙자) 노인회장댁 신축가옥 상량식을 마치고 음복을 나누고 있었다. 기자도 예를 표하고 상량 고사떡을 먹었다. 노인회장의 안내로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만큼 넓은 거실은 영주에서는 최고인 듯싶다. 김분영(73) 노인회부회장은 “노인회관이 마을마다 있지만 그 중의 제일은 일원리경로당”이라며 “서로서로 돌보미가 되어 줄뿐만 아니라 동기처럼 부모처럼 어르신을 공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산면 배해에서 19살 때 일원리로 시집왔다는 채정숙(89) 할머니는 “가마가 시댁 마당에 도착하여 가마문을 열고 살짝 보니 초가삼간이 눈에 들어왔다”며 “당시는 마을 전체가 초가집이었고 모두 농사를 짓고 살 때”라고 말했다. 장수면 두전리에서 가마타고 시집왔다는 우병출(83) 할머니는 “없는 집에 시집와 고생고생 말도마라”며 “시부모와 시누이 시동생에 생질까지 15식구가 한집에 살았으니 오죽했겠냐?”고 말했다. 김애경(88) 할머니는 “김원식 이장님과 이수호 노인회장님 그리고 김분영 부회장, 김희숙 부녀회장과 젊은 새댁네들이 마음을 많이 써 주어서 노인들이 편안하게 잘 쉰다. 참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남편 직장(철도) 따라 여기저기 옮겨 살다가 일원에 자리 잡았다는 최순화(81) 할머니는 “들이 넓어 마음도 넓고, 마을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넉넉한 인심에 정이 들어 제2의 고향이 됐다”고 했다. 박노미(81) 할머니는 “마을 앞을 지나는 기찻길이 내년이면 없어진다니 시원섭섭하다”며 “예전에 교통이 불편할 때 안정역이 가까운 우리마을을 모두가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우길자(79)·신옥자(79)·김옥자(79) 씨는 나이도 같고 이름 끝 자(子)도 같아 의좋은 삼총사다. 삼총사는 “공기좋고 인심좋고 살기좋은 우리 마을 일원리”라고 자랑했다.

김원식 이장
이수호 노인회장
김진구 전 노인회장
김분영 노인회부회장
채정숙 할머니
김애경 할머니
박승수 어르신
우병출 할머니
최순화 할머니
박노미 할머니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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