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봉(작가)

삽화 이석희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 한 달여 만에 누적관객 수 1,400만으로 외화사상 역대 1위를 기록하는 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의 『아이언 맨』으로 시작된 ‘어벤져스 시리즈’는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 맨, 헐크, 천둥의 신 토르, 블랙 위도우, 울버린, 스파이더 맨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을 탄생시키며 22번 째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태어난 이 초인들의 세상은 오늘 날 미국의 두 회사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가 양분하고 있다. ‘코믹스(comics)’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초인들은 만화 속에서 태어났다. 초기 초인들의 세상은 DC 코믹스가 장악했다. 대중들에게 최초로 그 이름을 알린 초인은 슈퍼맨이었다. 고난의 시대가 영웅을 낳는 것인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대공황(1929)’과 뒤이은 2차 세계대전의 불안과 공포, 피폐한 민중들의 삶 속에서 슈퍼맨이 태어난 것이다. 민망하게 하체에 착 달라붙는 파란 바지에다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사내에게 DC 코믹스는 ‘슈퍼맨(Superman)’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초인사상(超人思想)’과는 관계없이 초인(超人)의 독일어 ‘위버멘쉬(Ubermensch)’를 영어 그대로 번역해 ‘슈퍼맨(Superman)’이 된 것이다. 인간의 환경이나 도덕, 계율을 뛰어넘는 니체의 위버멘쉬나 인간능력의 한계를 깨부수어 버리는 슈퍼맨이 억지를 좀 부리자면 같은 반열의 초인일 수도 있겠지만.

멸망에 처한 크립턴 행성에서 지구로 보내어진 아이는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클라크 캔트라는 이름으로 자라게 된다. 성장하면서 지구인들과 다른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 클라크는 성인이 되어 대도시에서 그 능력을 감추고 신문사의 사진기자로 일하지만 인간들에게 위급한 일이 닥치면 검은 뿔테안경의 어벙한 모습에서 슈퍼맨으로 변신해 자동차, 기차, 비행기를 들어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미사일의 궤도까지 바꿔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이 초인을 처음 만난 것은 영화로 만들어진 『슈퍼맨(1979)』을 통해서였다. 그 영화에서 슈퍼맨을 연기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2004년에 죽었지만 슈퍼맨은 아직 살아남아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하고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지금도 어느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최초의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을 내세운 것도 DC 코믹스였다. 마초적인 힘을 과시하는 슈퍼맨, 배트맨과는 달리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여성상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해 여인왕국 아마존 족장의 딸로 설정된 그녀는 헤라클레스의 힘과 아테나의 지혜,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을 장착한 최고의 여전사로 태어났다. 1941년에 등장한 이 여성에게 중요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릴 정도의 의상만 허락한 것은 여성이 설치는 것을 곱지 않게 바라보던 그 시대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것일 테고 거기에 붉고 푸른 별 모양의 성조기 문양을 넣은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애국 마케팅의 일환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힘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여성상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녀의 등장은 그 시절 막 태동하던 여성해방운동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초인들의 세계의 주도권이 마블 코믹스로 넘어갔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로빈 등 DC 코믹스의 초인들은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 정의연맹)’로 불리었고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은 ‘어벤져스(The Avengers, 복수자들)’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이름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스티스 리그의 초인들은 선악의 경계가 분명했고 일말의 회의도 없이 악과 맞서 싸우는 무오류(無誤謬)의 완전체였지만 어벤져스의 영웅들은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들이었다. 아이언 맨은 슈트가 없으면 매사에 회의적인 바람둥이일 뿐이고, 캡틴 아메리카는 징집에도 딱지를 맞은 약골이었고, 헐크는 천하무적의 힘을 가졌지만 흉측한 모습의 녹색 괴물일 뿐, 완전무결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었다. 초인들의 세상에서도 낭만의 시대는 종언(終焉)을 고한 것인가?

앞서 말했듯 시대의 결핍이 초인들을 낳았다. 우리 시대의 결핍은 무엇인가? 지역과 이념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그것도 모자라 세대와 성별로까지 대립하는 오늘의 현실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화합과 상생을 말하지 않고 대립과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본다. 먼 하늘 저쪽에서 붉은 망토 펄럭이며 슈퍼맨이라도 날아와 이 땅에 저주처럼 드리운 먹구름을 밀고 가버렸으면 좋겠다. 이육사의 시 『광야(曠野)』의 마지막 연(聯)이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필자 誅: 2016년 여름이 끝날 무렵 ‘최대봉의 문화읽기[185]<여름은 지나간다>’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했었습니다. 그 후 두 번의 여름이 지나가고 세 번째 여름을 맞으면서 다시 연재를 재개합니다. 삽화는 문인화가 이청초 님, 서양화가 이석희 님이 맡아주시겠습니다. 독자 제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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