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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서씨 돈암(遯菴) 선생 후손 세거지 ‘장수골(長水谷)’우리마을탐방[248] 이산면 지동3리 ‘장수골’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5.23 17:51
  • 호수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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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下-종사랑공(震)파下-지추공(亮)파下-후덕공 후손
이계(伊溪)의 ‘긴 원류(長水)’에 터잡아 장수골(長水谷)

장수골 마을전경
경로당 준공식(2014)

이산면 장수골 가는 길
원당로에서 이산로를 따라 이산면 방향으로 간다. 영주고 앞에서 좌회전하여 원리-흑석고개-이산초-석포교를 건넌다. 석포삼거리에서 봉화방향으로 1.5km쯤 가다보면 장수골 버스승강장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 농로를 따라 700m가량 들어가면 대형 축사가 보이고 이어 마을이 나타난다. 지난 11일 장수골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서정권 이장, 서차석 노인회장, 서명호 새마을지도자, 서정학 씨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장수골
이산면 지동리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영주의 옛이름) 동면(東面)에 속했다. 조선 중기(1600년) 무렵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말암리(末巖里) 지동방(地洞坊)이라 부르다가 1750년경 면리(面里)로 개편할 때 말암면 지동리가 됐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말암면 지동리가 됐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개편 때 영천군의 산이면·어화면·말암면을 통합하여 ‘이산면’이라 칭했다. 이 때 장수골은 영주군 이산면 지동리에 편입됐다가 지동3리로 분리됐다. 

서정권 이장은 “지동3리는 장수골 단독 마을로 달성서씨 집성촌”이라며 “1960년대까지 4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23가구에 50여명이 산다”고 말했다.

지명유래
1984년 경북교육위원회가 발간한 지명유래 총람에 보면 「달성서씨 돈암(遯菴) 선생의 후손 일족(一簇)이 이계(伊溪,이산천)의 상류 갈전동(葛田洞,이르실 뒷골)에 터를 잡고 살다가 좀 더 넓고 평탄한 곳으로 옮겨와서 ‘긴 계곡의 원류’에 터를 잡았다하여 ‘장수골(長水谷)’이라 불렀다. 徐丙周 제공」이라고 기록했다. 또 이산면 홈페이지는 「긴 계곡(長水) 원류 평탄한 곳에 마을을 개척했다하여 장수동(長水洞)이라 했다」고 썼다. 서차석 노인회장은 “이곳은 이계의 원류(본줄기)로 계곡이 길다하여 긴 장(長)자에 물 수(水)자를 써 장수동이 된 것으로 안다”면서 “예로부터 이계 상류에 못(池)이 여러 군데 있어 못 지(池)자 지동(池洞)이 됐다는 이야기를 선친께 들었다”고 말했다.

장수골 문중의 선대(先代)
장수골의 달성서씨는 단종 절신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1407-1490)의 후손들이다. 돈암은 시조 진(晋)의 6세손으로 세종조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대과를 준비하던 중 계유정란(1453년)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몇 권의 책만 가지고 소백산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처음 처외가인 영주 한성동에서 우거(寓居)하다 순흥부 오지마을 등영(登瀛)에 몇 칸 초막을 지었다. 등영에서 그의 처지는 몹시 궁핍했으나 하루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정의 외아들 진(震,7世) 역시 학문이 높아 종사랑 참봉을 지냈으며, 종사랑공파 파조가 됐다. 진의 장남 호(浩,8世)는 전연사 직장을 지냈고, 호의 아들 명세(名世,9世)는 처사로 살았다. 명세의 3남 량(亮,10世,1564-1656,壽92)은 소수서원에 있을 때 유생들을 훈계한 일화(嚴石不言 敬字猶存)가 후세에도 감명을 주고 있다. 수직으로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를 받아 지추공파 파조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시시당(是是堂) 정자가 새내마을 뒤 언덕에 있다.

시시당(是是堂) 정자
12대조 후덕 선조의 묘
갈전동 선대 묘소 3기

달성서씨 장수골 입향 내력
시시당의 4남 후덕(後德,11世,1613-1674)의 묘가 예고개(삼거리)에 있다. 장수골문중이 벌초와 시제를 받드는 묘소 중 가장 선대이다.

후손 서명호(70,23세) 씨는 “후덕 선조는 저의 12대조”라며 “묘가 예고개에 있는 것으로 봐서 등영에 사시던 선조께서 천상면(川上面,현 평은면 동편) 안동권씨家로 장가들어 이 근처 어딘가에 사셨던 것으로 추정 된다”고 말했다. 장수골에서 동쪽방향 고개 넘어 갈전동에 선대 묘소가 있다. 갈전동(갈밭골)은 장수골문중 선조가 처음 터 잡은 곳이다. 갈전동 후산에 모셔진 3기의 묘는 후덕(예고개)의 아들 연(璉,12세,1648-1693)과 연의 아들 천경(天景,13세,1672-1742), 천경의 손자 창성(昌成,15세,1713-1751)의 묘이다.

서차석(73,23세) 회장은 “갈밭골에 모셔진 묘 3기는 가운데가 11대조 연 할아버지이고, 왼쪽이 10대조 천경 선조, 오른쪽이 8대조 창성 선조의 묘”라며 “9대조 만순(萬舜,14세,1695-1758) 선조의 묘는 아수골에 있고, 7대조 철윤(喆胤,16세,1750-1824) 선조의 묘도 갈밭골 후산에 있다”고 말했다.

서정권(62,22세) 이장은 “세보와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후덕(예고개할배) 선조의 아들 연(璉) 선조께서 이곳에 처음 입향하신 것으로 추정된다”며 “연(1648生) 할아버지께서 20세쯤 갈전동에 오셨다면 그 때가 1668년이다. 그래서 우리 선대가 이곳에 세거한지 350년 됐다고 보면 되겠다”고 했다.

현대식 축산시설
CCTV 16대로 축사관리

선조들이 개척한 평평한 땅
협소한 갈전동에 정착한 연(璉) 선조의 후손들은 삽과 호미로 넓고 평평한 장수골을 개척했다. 지금 마을에는 대형 트랙터 여러 대가 선진농업·대농(大農)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이렇듯 장수골 사람들은 선조들이 남긴 평평한 땅을 잘 가꾸어 풍요로운 농촌으로 발전시켰다. 서정권 이장께 슬쩍 물어 봤다. “농장의 규모가…?” 서 이장은 “축사 4천평에 소 150두, 생강 1만 2천평, 고추 5천평, 수박 4천평, 구기자, 도라지 등…”이라며 “CCTV 16대로 축사를 관리하고, 최첨단 농업시설을 완비하였으나 늘 일손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가선대부 교지
서정종 씨
서현태 씨
서정세 씨

선조들이 남긴 교지·문적
서정학(70) 씨家에는 선조들이 남긴 교지와 문적들이 여러 종류 있다. 마을회관 거실바닥에 이들을 펴놓고 서정권 이장, 서차석 회장, 서정종(79)·서현태(66)·서정세(66) 씨 등 여러 종중들과 같이 살펴봤다. 서정학 씨는 “서명관 고조부님의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교지(道光四年,1824년), 서학열 증조부님의 통정대부 교지(63光緖元年,1896년), 서상필 조부님의 구품종사랑충의참봉 교지(光武七年,1903년) 그리고 향교·서원에서 온 망기, 제문, 서책 등을 소장하고 있다”며 내용을 설명했다. 좌중은 “귀중한 문서이니 소수박물관에 위탁·보존이 좋겠다”고 권했다.

장수골 사람들
어버이날 경로잔치

장수골 사람들
마을회관 앞에 준공표지석이 있다. 「출향인 서석한 씨가 서정호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회관 부지 70평을 희사했다」는 내용이다.

서 이장은 “회관 부지가 확보되어 시(市)로부터 건축비를 지원을 받아 2014년 3월 15일 준공식을 열었다”며 “부지 희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장수골 사람들은 5월 8일 어버이날 도촌 송어회식당에서 경로연(敬老宴)을 열었다. 김차희(87) 할머니는 “지금 한창 바쁜 일철이라 식당에 가서 경로연을 열게 됐다”며 “잘 먹고 잘 놀게 해주신 우리 이장님과 노인회장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최미숙(62) 부녀회장은 “우리 마을은 달상서씨 집성촌으로 이웃이 모두 아재고, 형님이고 조카”라며 “부녀회는 80세 할머니들까지 모두 부녀회원이고,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합력하여 행사를 치룬다”고 했다. 녹전 바우재에서 19살 때 장수골로 시집 왔다는 최정자(88) 할머니는 “새댁 때는 물 여다 먹고, 빨래하고 일만했다. 당시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좋은 세상이 됐다”고 했다.

박순재(85) 할머니는 “봉화 봉성에서 장수골로 시집오니 시조부가 아직 갑(60)전이고, 시부는 37살이었다. 시동생, 시누이 모두 합쳐 15식구가 한집에서 살았다”며 “지금 같으면 시집와 살 사람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그 때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화전(82) 할머니는 “달성서씨 어르신들은 조상을 성심껏 모신다”며 “해마다 10월이면 떡고리를 메고 이산저산 시사(時祀)를 지내러 다니신다”고 했다.

두월2리 경주이씨家에서 장수골로 시집왔다는 이봉점(80)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든든한 이장(서정권)이 마을의 자랑”이라며 “이렇게 좋은 경로당을 짓고, 경로잔치를 하고, 관광도 가고 늘 과분한 대접만 받고 산다”고 했다. 선대의 장수골 입향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 12대조 묘소부터 7대조 묘소까지 직접 찾아가서 비문 해석에 협조해 주신 서정권 이장, 서차석 회장, 서명호 지도자, 달성서씨 영주종친회 서건식 사무국장께 감사드린다.

서정권 이장
서차석 노인회장
서명호 새마을지도자
최미숙 부녀회장
최정자 할머니
김차희 할머니
박순재 할머니
이화전 할머니
이봉점 할머니
서정학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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