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민주주의 시민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자유에 속한다. 누구도 외부로부터 속박을 받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 헌법 19조도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를 동반한다. 헌법 제 22조에 명시되어 있다. 표현의 자유가 없으면 양심의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무언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들 것이다.

정말 아무 사상이나 가져도 되는가? 정말 마음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사회가 온전할까?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늘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검열을 한다는 것은 이미 사상의 자유를 스스로 유보하고 있다는 증거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이런 현상을 분단 트라우마(Trauma)로 설명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수반한다. 개에 물려 고생한 적이 있는 사람은 개 트라우마에 걸리기 쉽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도 개 트라우마가 있으면 조그만 치와와를 보고도 식은땀을 흘리며 무서워한다. 트라우마는 공포를 수반한다. 공포가 일어나면 정상적인 사고나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다. 트라우마는 사고와 행동의 장애를 일으킨다.

해방 공간과 분단 상황에서 우리는 몇 번의 끔찍한 사건을 검험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발표했다. 유신 체제에 맞서던 민청학련의 배후에 북한의 지령을 받는 인민혁명당 재건위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이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 선고를 확정했다. 다음 날 새벽, 서대문형무소에서 8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그러나 인혁당 재건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단체였다. 중앙정보부가 관련자들을 혹독하게 고문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사법학회는 도예종 등 8명의 사형이 집행된 4월 8일을 ‘사법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사형당한 8명이 경북대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사람들이었다. 대구경북 지역이 유난히 분단 트라우마가 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분단 상황의 국가 권력은 권력에 비판적인 세력에 붉은 색깔을 입혀 무자비한 처단을 했다. 색깔만 다르다고 하면 언제든지 누구나 희생될 수 있다는 공포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북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남에서는 색깔로 억압하지만 북에서는 출신성분이라는 것으로 억압했다. 작년에 남과 북은 서로 비방하거나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분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지금 정권은 사상이 다르다고 막말을 한다고 처벌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해도, 청와대를 폭파하자고 해도, 문재인 지지자를 달창(달빛 창녀단)이라 해도 처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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