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 본지논설위원)

우리 고장 시민이라면 분수대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 같다. 평소에는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쉬어가는 휴식공간이지만 한여름에는 흰 물줄기들이 힘차게 치솟아 오르다가 한꺼번에 부서져 내려 시원스러운 모습을 자랑한다. 성탄절 무렵이 되면 열매처럼 촘촘히 붙은 수많은 전등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분수대 뒤쪽 소나무와 주목 사이에 연산홍이 곱게 핀 나지막한 언덕에 ‘수해복구기념비’가 서 있다. 라이온즈클럽 사자상 뒤의 어른 한 길이 조금 못되는 긴 사각형 모양의 비석이다. 전면에는 한자로 ‘수해복구기념비’를, 후면에는 자잘한 글씨로 61년 7월11일, 태풍으로 인한 영주 대수해 상황과 복구 과정을 간략하게 썼다. 시선을 붙잡는 것은 ‘비(碑)의 높이는 1961년 7월11일 수해 때의 수침위(水浸位)입니다’라는 위 부분에 새긴 글귀이다.

글귀로 미루어 기념비의 꼭대기까지 물이 차 올라왔다는 의미인데 수해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알게 한다. 우리 고장은 철탄산이 있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이다. 분수대는 영주초교가 저만큼 보이는 시가지 북쪽 끝자리에 있다. 분수대 위쪽 지역만 남겨 놓고 시내 전역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 아래 남서쪽에서부터 기념비의 정수리까지 물이 밀려 왔다고 생각하면 역경을 극복한 우리 고장의 역사를 새삼 절감한다.

새벽 3시경부터 8시까지의 5시간 동안 337여㎜의 폭우가 쏟아져 영일초교 부근의 서천이 범람하고, 제방 30여m가 무너지면서 시가지 삼분지 이 이상이 순식간에 물속에 잠긴 참사였다.

한편, 중앙초교 뒤편 왼쪽에 이층 양옥집이 있다. 넓은 마당에 짙푸른 나무가 우거져 지붕이 간신히 보이는 집이다. 담장을 넘어선 정원의 향나무와 적단풍에 은행나무를 보면 오래된 집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도 사람이 거주하는 정남향집으로서 겨울에는 종일토록 햇살이 떠나지 않을 양지바른 자리에 지은 서양식 집이다. 전제적인 모습이 단순하면서도 단정해 보인다. 집이든 상가든 높은 건물이 없던 60년대에는 시멘트로 지은 이층 가정집은 최고급 주택이었을 것이다.

이 저택이 61년 시가지가 침수되었을 때 영주를 찾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하룻밤을 숙박한 곳이다. 최고 통치자가 민가에 숙박하는 예는 드문 일인데 호텔도 번듯한 여관도 없던 시대에 그마나 모두 물에 잠겨 부득이 가정집을 찾았던 모양이다. 당시 교통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귀경하지 않은 채 민가에서 일박 한 것은 우리고장의 수해상황을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한 결과일 것도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좀 더 지나간 뒤, 사가들이 해야 할 몫일 것이다. 그러나 공과를 떠나 6,70년대에 걸친 20여년의 우리 현대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대통령의 일박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칫 사생활에 불편을 줄 수 있으므로 소박하게 만들어 내용을 명료하게 적어서 바깥의 적절한 위치에 부착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치지 않고서는 우리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집일 것이다.

그에 대한 견해가 상반될지라도 보는 사람 모두에게 현대사를 반추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세기 전의 급변하던 사회생활을 돌아보는 추억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북 내륙 산간 고을에서 대통령이 하룻밤을 묵은 집이라면 타 지역 사람들도 사연을 알고자 신기하게 여길 것 같다.

조흥은행 영주지점은 42년 신한은행 건물 뒤편 주차장 부지에 개점하여 7년간 운영하다가 49년에 조금 앞자리로 옮겨 건물을 신축, 이전하여 47년 동안 시민을 위한 금융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96년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합병하여 신한은행이 되고, 새 건물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49년에 지은 옛 조흥은행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70여년의 역사를 잇는다. 우리고장을 대표할 건축물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은행과 시 당국이 역사성을 고려하여 논의했더라면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적 교훈을 얻고자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을 보존하는 고장도 있다. 광복 전후에 지은 건물도 쌓아온 역사를 상기하여 보존하는 사례도 흔하다. 70여년 역사를 지닐 조흥은행 건물이 사라져 안타깝다. 역사는 가시적인 대상이 있을 때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살펴보면 우리 고장에는 보존 가치를 지닌 건물이 더러 있을 것이다. 이를 찾아내어 내 고장을 이해하는 자료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긴 역사를 이어온 건축물은 실용성을 넘어서는 상징적인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

여왕 같다는 오월이다. 산과 들이 연두 빛 신록으로 물들어 싱그럽다. 계절의 여왕은 단연 오월이다. 오월은 축제의 계절이자 가정의 달이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우리의 삶 뒤란에는 시련을 극복한 영주의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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