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247] 봉현면 하촌3리 ‘배리들’

지형이 ‘벼루’처럼 생겼다하여 벼루들-배리들
욕심 없이 일하고, 칭찬과 배려가 장수 비결

배리들 마을전경
하촌3리 마을회관
절골과 절바우

봉현면 하촌3리 가는 길
풍기 IC 사거리에서 예천방향 히티재를 넘는다. 유전리 꽃피는 광장을 지나 노좌1리-하촌1리-하촌2리를 지나 1km쯤 더 내려가면 ‘꽃피는 마을, 하촌3리’라고 새긴 마을표석이 나타난다. 하촌3리는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감천면 경계지역이다.

지난 6일 ‘배리들 마을’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권중근 이장, 허태수 노인회장, 임성기 총무, 조동원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배리들 마을
봉현면 지역은 원래 옛 풍기군에 속한 마을이다. 풍기는 통일시대 때 처음으로 기목진(基木鎭)이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고려 때는 기주(基州)라 부르다가 조선 태종13년(1413)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기천현(基川縣)이 됐다. 1414년 세종의 아들 문종(李珦)이 태어나 그 태(胎)를 은풍현 명봉산에 묻었는데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그 보상(報償)으로 은풍의 풍(豊)자와 기천의 기(基)자를 따 풍기(豊基)라 하고 군(郡)으로 승격됐다.

조선 중기(1700년경)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이 지역은 풍기군 노좌리면(魯佐里面) 하촌리(下村里)가 됐다. 당시 노좌리면에는 유음리(柳陰里), 이전리(泥田里), 대촌리(大村里), 하촌리가 있었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노좌리면이 노좌면으로 개칭되면서 노좌면 하촌리가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풍기군, 순흥군, 영천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고, 풍기군의 노좌면과 와룡면(臥龍面)을 합쳐 새로운 봉현면이 태어났다. 이 때 하촌리는 영주군 봉현면 하촌리가 되었다가 1,2,3리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권중근(61) 이장은 “지금 하촌3리는 골마에 13가구, 이랫마에 8가구, 건너마에 4가구 등 25가구에 60여명이 산다”면서 “대부분 사과농사를 짓는 사과생산지로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말했다.

지명유래
이 지역 사람들은 하촌3리를 ‘배리들’이라 부른다. 이 마을 임성기(77) 씨는 “예전에 이곳 들판의 모양이 ‘벼루’를 닮아 ‘벼루들’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배리들’이 됐다”면서 “200여 년 전 배리들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름 또한 ‘배리들’이 됐다”고 말했다.

조동원(63) 새마을지도자는 “저의 선대는 원래 안동 풍천에 사셨는데 증조부님께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건너마 산기슭에 집을 짓고 사시다가 아버지 대에 이르러 골마로 옮겨와 살게 됐다”며 “예전에 논농사 중심으로 살 때 들판의 형상이 벼루 모양과 같다하여 ‘벼루들’이라 부르고, 쓰기는 연평(硯坪)이라 썼다는 이야기를 선친께 들었다”고 말했다.

‘봉현’이란 지명은 히티재 중턱 한천리 맞은편에 있는 봉정지(鳳停地,봉이 머물다 간곳)에서 봉(鳳)자를 따고 여현(礪峴.히티재의 옛이름)에서 현(峴)자를 따 봉현면(鳳峴面)이 됐다.

또 이곳을 ‘하촌리’라 칭한 것은 대촌리(노좌리의 옛이름) 아래쪽에 있다하여 하촌리(下村里)라 했다고 한다.

100년 고택 돌담집

마을의 형성과 변천
이 마을 임성기(예천인) 씨는 고조부 때부터, 유시호(풍산인) 씨는 증조부, 조동원(한양인) 씨 증조부, 김지우(경주인) 씨는 조부 때부터 이곳에 살았다고 하니, 1890년경부터 마을 형성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유시호 씨는 “예전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임성기 씨 선대가 이곳에 제일 먼저 정착했다는 이야기를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다”며 “저의 선대는 본래 안동 하회에 살았는데 조선말 나라가 혼란할 때 수한동으로 피했다가 다시 배리들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김학원(82) 어르신은 “구전(口傳)에 의하면 조선 중기까지는 들(坪)만 있고 마을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처음 마을이 생긴 곳은 석관천 건너(배리들) 잿마 근처로 보여지며, 일제말(1940년) 신작로가 새로 생기자 교통이 좋은 골마와 아랫마쪽으로 이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이유는 선대 대부분이 잿마에서 골마로 옮겨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근수(75) 씨는 “아랫마 버스정거장 뒤에 보면 토담집 한 채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아마도 마을이 형성될 무렵 지은 집으로 100년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옛 선조들의 의식주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김지우(66) 씨는 “이곳은 영주와 예천 경계지역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살고 있다”면서 “초등학교는 봉현남부에 다니고 중학교는 감천중을 다녔다”고 말했다.

돌과 옹기와 들풀

부부해로(夫婦偕老) 장수마을
마을회관 앞에 ‘경북 최고령 장수마을’이라고 새긴 표석이 있다. 장종석(82) 어르신은 “하촌3리는 2001년 경북 최고령 장수마을로 선정됐다. 당시 80세 이상 어르신들이 20여명 계셔서 ‘장수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강신인(70) 씨는 “당시 마을 전체 인구대비 80세 이상 어르신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경북에서 가장 높아 장수마을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배균(81) 어르신은 “고령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부부가 해로하고 있어 ‘부부해로(夫婦偕老) 장수마을’이 된 것”이라고도 했다.

임성기 총무는 “장수마을로 선정되자 KBS를 비롯한 여러 방송사에서 며칠간 묵으면서 촬영하여 특집방송을 내보냈다”며 “그 때 어르신들 말씀이 ‘욕심 없이 일하고, 남을 칭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절골과 약수터의 전설
골마 뒤쪽에 절골이 있다기에 임성기 씨께 청하여 그 곳에 올랐다. 집채만한 바위가 있고, 그 주변에 사지(寺址)가 눈에 들어온다. 절바위 앞에 있는 약수물을 한 모금 삼키니 창자까지 시원하다. 누군가 기도를 드리고 간 흔적도 보인다.

임 씨는 “구전에 의하면 고려 때 지은 오동사(吾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며 “예전에 석불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밭일을 하다보면 기와 파편이 나오기도 한다. 또 이 약수터는 피부병에 좋다하여 1970년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절골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산과 들이 온통 과수원이다. 봉현면이 그렇듯 하촌3리 전체가 과수원이다.

작은 갤러리

작은 갤러리
배리들 골마 언덕 위에 하얀집이 한 채있다. 그 집 마당가 냉동창고 벽에는 담쟁이넝쿨, 고택대문짝, 한옥문살 등이 걸려 있다. 선조들이 남긴 옛것들이 귀한 작품이 됐다. 창고 옆에 작은 무대도 있다. 무대 왼쪽은 온갖 봄꽃이 만발하고, 그 맞은편에는 맷돌, 호박돌, 수석, 옹기, 들꽃 등이 어우러져 자연사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하얀집 안으로 들어가 봤다. 거실과 2층 방은 ‘작은 갤러리’이다. 집 주인 양미경(53) 씨가 취미생활로 얻은 민화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양 씨는 “배리들 마을은 자연 풍광이 아름다워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라며 “제가 평소 배운 수화(手話)를 지역 소외계층과 함께 하는 게 작은 꿈이다. 또 우리 집 마당에서 이들을 위한 작은음악회를 열어 이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도 했다.

권말분, 정점규, 이순명, 장재숙 씨
강신인, 김지우, 유시호, 박욱훈 씨
배리들 사람들

배리들 마을 사람들
기자가 히티재를 넘어 배리들을 찾아가는 길에 권중근 이장 전화를 받았다. “마을회관 뒤 하얀집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 집 마당에 갔다. 텃밭에서 금방 뜯은 상추에 삼겹살구이를 얹어 쌈을 쌌다. 배리의 특별한 맛,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벌였다.

허태수 노인회장은 “어버이날 행사는 마을의 오랜 전통”이라며 “이날 출향인 여러분들이 고향을 방문하여 과분한 정성보따리를 풀었다”며 “올해도 풍성한 잔칫날이 됐다”고 말했다.

황순일(71) 씨는 “경로효친 행사는 우리 마을의 미풍양속”이라며 “설, 추석, 정월보름, 어버이날은 자녀들이 고향을 찾아 어르신들과 함께 뜻깊은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정점규(80) 할머니는 “올해 어버이날도 잘 먹고 잘 놀았다”며 “늘 수고하시는 권중근 이장님과 사모님, 허태수 회장님과 임성기 총무님, 조동원 지도자님, 윤명숙 부녀회장님과 권말분·이순명·장재숙 새댁, 그리고 젊은 새댁네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고 했다.

권중근 이장
허태수 노인회장
임성기 노인회 총무
조동원 새마을지도자
김학원 어르신
이배균 어르신
장종석 어르신
이근수 씨
항순일 씨
양미경 씨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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