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조선의 문장가 주세붕

『명심보감(明心寶鑑)』은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지낸 추적(秋適)이 중국 선현들의 금언(金言)·명구(名句)를 엮어서 편찬한 청소년 수신서(修身書)이다.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초학 입문용 교과서로 명성을 굳힌 이 책은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삶과 같이 호흡하는 명 고전 중의 하나이다. 단순히 한문 학습을 돕는 쉬운 문장들로 구성했다하여 그 같은 위상이 굴러왔을까? 간결한 문장으로 선인들의 보배로운 말과 글을 담아 인생의 잠언으로 두고두고 숙독해야 할 교훈서로 편찬되었기에 그런 지위와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게다. 특히 치우치지 않게 유불선의 복합된 사상을 망라시켜 동양 사상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보물서이다.

『명심보감』효행편에는 중국의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한시 한 수가 인용되고 있다. <父兮生我(부혜생아)…> 이른바 ‘아버지 날 낳으시고…’로 시작되는 한시(漢詩)이다.

 

父兮生我(부혜생아) 母兮鞠我(모혜국아) -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哀哀父母(애애부모) 生我劬勞(생아구로) - 애달프다 어버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셨구료

欲報深恩(욕보심은) 昊天罔極(호천망극) -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할진데 높은 하늘처럼 끝이 없다.

 

이후 약 250년쯤 뒤 조선 명종 때의 명신,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의 「무릉속집(武陵續集)」에 자신의 작품, <아버님 날 나시고…>라는 시조(時調)가 실려 있다.

 

아버님 날 나시고 어마님 날 기시니 - 아버님이 날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부모 옷 아니시면 내몸이 업실낫다 - 부모님이 아니셨더라면 이 몸이 없었을 것이다

이 덕을 갑려 하니 하 이 업스샷다. - 이 덕을 갚고자 하니 하늘같아서 끝이 없구나.

 

이 시조의 작자 주세붕은 풍기군수 때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세운 사람이다. 저서로는 『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고, <태평곡(太平曲)>, <도동곡(道東曲)> 등의 경기체가 작품과 <오륜가(五倫歌)>를 비롯한 시조(時調) 14수가 전하는 조선조를 대표할 만한 문장가로 평가 받는다. 1549년에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건립했는데, “오륜가”는 그때 지은 시조이다. 6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인데 이 작품은 두 번째 연에 해당하지만, 첫 수가 서시(序詩)인 고로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첫 수라고 할 수도 있다. 다분히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시조이다.

이보다 약 30년 뒤 1580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있었던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장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지은 시조 <아바님 날 나흐시고>가 그의 문집 <송강가사(松江歌辭)>에 실려 있다. ‘훈민(訓民)’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래 계속 강조되어 온 화두여서 송순(宋純)이나 주세붕의 <오륜가(五倫歌)>와 같은 훈민 시조가 정철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연시조인 <훈민가(訓民歌)> 16수 중 제1수에 해당한다.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ᄅᆞ시니 -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시랴 -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ᄀᆞᄐᆞᆫ ᄀᆞ업ᄉᆞᆫ 은덕을 어데 다혀 갑ᄉᆞ오리. - 하늘같이 높고 큰 은덕을 어디대어 갚사오리.

 

많은 사람들이 <아버님 날 낳으시고…>로 시작하는 효행시조는 송강 정철의 시조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앞에서 보듯 주세붕의 ‘오륜가’가 있었고, 이를 찍어낸 듯한 붕어빵 효행시조들을 <김우기>, <이익>, <낭원군(朗原君)> 등의 유림 선비들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연시조일 경우 대부분 제1수에 <아버님 날 낳으시고…>가 배치된다. 그리고 이들 <아버님 날 낳으시고…>는 모두 공통적으로 초장에서는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노래하고, 종장에서는 부모의 은혜가 끝이 없음을 노래하여 효행을 특히 강조하는 주세붕의 <오륜가>와 거의 비슷한 골격을 이루고 있다. 즉 한글을 사용한 우리 고유의 정형시가(定型詩歌) 형식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시조는 주세붕의 <오륜가>가 시초라는 이야기가 된다. 더구나 초·중·종장의 형식과 글자 수를 엄격히 제한하던 당시의 시조 형식을 감안한다면 이를 가장 잘 갖추어 다스린 작품이 주세붕의 <오륜가> 등으로 꼽을 수 있어서 그가 단연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의 이런 효행의 뿌리가 소수서원 언저리 요소요소에 든든히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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