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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로열로드 유감김영애(시조시인. 수필가. 본지논설위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5.09 15:09
  • 호수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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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산이나 마을을 돌아가는 현장을 하회, 수도리, 회룡포 등으로 부르는데 이름은 달라도 물이 돌아 흐른다는 의미는 같다. 흘러가던 물이 산과 들 사이에서 흐름을 조절하는 이 모습을 보자면 자연도 쉼을 즐긴다고 느껴진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직진하던 강이 이처럼 평화로운 여유를 부리며 한 숨 고르는 현장은 수없이 많지만 유독 안동 하회가 독보적인 명승지로 대접 받는 이유는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마을을 감아 돌면서 흐른다고 붙여진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 집성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회탈을 만든 사람이 허 도령 이라는 말이 구전(口傳)하고, 안 씨 문중의 딸이 류 씨 가문으로 시집왔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류 씨들의 집성촌이 되기 전에는 허씨네와 안씨네가 먼저 살고 있었다는 반증도 된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서애 유성룡 선생과 대유학자 유운룡 선생의 출생지로도 유명하다. 그들의 고택이 조선시대 사대부의 가옥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주위에는 부용대, 병산서원, 유성룡의 옥연정사. 이퇴계 선생의 편액이 있는 겸암정사 등이 있어 관광지로도 이름이 높다. 뿐만 아니라 서애 유성룡의 임진왜란 회고기인 징비록과 하회탈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그 외에도 보물이 4점, 중요민속자료 10점, 사적 등이 있어 마을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있는 곳이다.

하회가 품어주는 하회마을이 2010년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옛 가옥이 아직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옛 가옥에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양반과 상민이 공존했던 당시의 마을문화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앞으로도 전통가옥을 원형대로 유지해야하는 의무를 지닌 곳이다.

1999년 영국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다녀갔다. 기억으로는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곳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여 추천한 곳이 이곳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봉정사라고 한다. 여왕이 한국적인 곳에서 한국적인 생일상을 받던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가장 현대화된 장소가 아니라 가장 우리다운 현장을 보고 싶어 하는 여왕의 식견에 내심 놀랐다. 덕분에 하회마을은 엄청난 유명세를 탔다. 충효당 앞길에는 여왕 방문 기념식수가 있고 여왕의 모형과 함께하는 포토 존이 생겼다.

어느 날 의아스런 보도를 들었다. 안동시에서 하회마을에 여왕이 다녀간 길을 ‘로열로드’ 로 명명해서 관광효과를 높이려는 계획을 한다는 것이다. 안동에서 일어 날 일을 영주에서 걱정한들, 그것도 소시민이 걱정한들 무슨 영향을 끼칠까만 그건 안 되는 발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먼저 그것이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마을에 royal road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어울리겠는가. 또 여왕은 로열이지만 그들의 로열이지 우리의 로열은 아니다. 여왕이 다녀간 흔적을 사료(史料)로 남기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한번 명명하면 영원할 도로 명에 까지 쓴다는 데는 대단한 거부감이 든다.

굳이 길에다 이름을 붙이려면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는 구국의 눈을 가진 “유성룡 길” 이라 하면 왜 안 되는가? 왜 우리는 영어라야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왜 우리는 잠깐 스쳐간 남의 나라 로열은 대접하면서 우리의 조상에게는 소홀한가? 참으로 답답하다.

가장 한국적이기 때문에 숱한 곳을 두고 여왕이 찾아 왔는데 가장 한국적인 우리글을 두고 국제적인 영어를 갖다 붙이려는 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화로 발전된 멋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민속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

이 땅에서 한국적인 것이 영원하려면 우리글과 우리말로 가꾸어야 한다.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전통가옥이 그대로 숨 쉬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마을에 보도대로 royal road 라는 이름이 붙여진다면 참 유감스러울 것 같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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