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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때 군(郡) 소재지 봉향면 ‘화천리’-근대 ‘중앙통’ 마을우리마을탐방[244] 하망동 중앙통 마을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4.29 07:49
  • 호수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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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때 군아(郡衙)가 있는 마을 화천리(禾川)
옛 저잣거리-근세 어물전·나무전-중앙통 마을

중앙통 마을 전경
중앙통(1960년대)

중앙통 마을의 위치
조선 때 영천군(옛 영주) 관아가 영주초 자리에 있었고, 관아 앞에 저잣거리가 있었는데 그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 화천리(禾川里)이다. 옛 화천리는 읍치의 중심마을로 현 하망동우체국-봉화통로-장물도가(동창산업)까지 철탄산 남쪽자락 끝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지난 19일 중앙초 동편 중부노인정에서 최병열 노인회장, 박승창 전 노인회장, 이영도 사무국장, 이상철 15통장 그리고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옛 화천의 역사와 중앙통의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봉향면 화천리
영주는 본래 고구려의 내이군(奈已郡), 통일신라 때 내령군(奈靈郡), 고려 때 강주(剛州團練使)-순안(順安縣令)-영주(知榮州事)로 불렀고,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별칭龜城)이 됐다. 160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군(郡) 소재지 지역에는 봉향리(奉香), 망궐리(望闕), 가흥리(可興), 산이리(山伊) 등 4개 리가 있었고, 동면에 말암리(末巖)·임지리(林只)·천상리(川上), 남면에 어화곡리(於火谷)·적포리(赤布)·진혈리(辰穴), 서면에 권선리(權先)·호문송리(好文松)·두전리(豆田), 북면에 도지본리(都知本)·오등리(五等)·부석리(浮石)가 있었다.

읍치(군아郡衙가 있는 마을)의 중심지인 봉향리에는 성저방(城底)·화천방(禾川)·망동방(望洞)·원당방(元塘)·광승방(廣升)·지천방(至天)·마암방(馬巖)·증귀방(增貴) 등 8개 속방이 있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1750년경)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개편하면서 봉향면 화천리 등으로 개편됐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봉향면 화천리로 개칭됐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화천리는 영주군 영주면 하망리에 편입됐다. 그 후 1940년 영주읍 하망리, 1980년 영주시 하망동, 1995년 통합 영주시 하망동에 속한 마을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
우리 사는 영주를 영주라 한 것은 「고려 고종(1258년) 때 위사공신 김인준(金仁俊)의 고향이라 하여 순안을 영주(榮州)로 고치고 지영주사(知榮州事)를 두었다」에서 유래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가 됐다. 읍치의 중심인 이곳을 봉향면(奉香面)이라 한 것은 관아 뒤에 향교가 있어 ‘받들어 배향한다’는 뜻으로 봉향면(奉香面)이 됐다고 한다. 또 이 마을을 화천이라 한 것은 마을 앞이 모두 논(畓)이고 서쪽에 구계(龜溪,서천), 동쪽에 사천(沙川,원당천)이 있어 벼화(禾)자에 내 천(川)자를 써 화천(禾川)이라 부르게 됐다.

옛 난전

옛 저잣거리-근대시장
저자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데 이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저잣거리’란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길거리를 말한다. 1930년대 영주 시가지를 찍은 사진에 보면 철탄산 자락에 동서로 길게 마을이 형성돼 있고 그 앞은 모두 논이다. 옛 영천군의 저잣거리는 현 시의회 앞에서 하망동우체국에 이르는 짧은 거리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대에 와서 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조선총독부가 시장 설립을 추진하여 현 중앙초 자리에 우시장, 분수대(신한은행)에서 하망동성당 방향에 난전과 미곡시장이 생기고 연이어 어물전(중앙초-농협동부지점)·나무전(중앙초-귀빈예식장)이 생겼다. 이영도(75) 사무국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1970년대까지 이곳은 영주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며 “일제 때는 미곡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1960-70년대 각종 선거 때는 유세장이 되기도 했다. 이곳에 시장이 번성하면서 ‘중앙통’이라 불렀고 지금은 중앙로가 됐다”고 말했다.

영주중부국민학교
1945년 해방과 함께 이곳에 영주중부국민학교가 설립됐다. 원래 일본인학교 고등소학교가 있었는데 해방 되던 해 12월 영주국민학교(3학급)로 개교했다. 다음해(1946년) 영주중부국민학교로 개칭되고, 1996년 영주중앙초등학교로 변경됐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이상철(76) 통장은 “영주중앙초등학교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학교로 명성이 높다”며 “장윤석 전 국회의원과 최교일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대법관, 검찰총장 등 십 수 명의 법관을 배출한 학교”라고 말했다.

박승창(81) 회장은 “1960대 초까지 중앙초 동편은 모두 논이어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고 놀았다”면서 “이 무렵 이곳 사람들이 직접 원당천 모래를 이고 지고 날라 터를 돋우어 지금 모습의 마을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원당천과 화천마을
옛 화천마을 동쪽을 흐르는 물을 사계(沙川)라 했다. 사계가 언제부터 원당천(元塘川)이라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원당천은 철탄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물이 삽재 부근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수하여 보름골 앞을 지나 시가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다가 현 노인복지관 앞에서 서천에 합류됐다.

김명동(83) 부회장은 “해방 후 도시로 나온 많은 사람들은 원당천 둑에 기대 지은 집이 즐비했으며, 6.25 후 보릿고개를 넘을 때는 둑 밑에 미군 군복을 염색해 주는 드럼통 염색시설이 여러 군데 있었다”고 말했다.

정연희(87) 부회장은 “지금 원당로는 예전에 원당천이 흐르든 곳”이라며 “당시 원당천은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재윤(94)·손분홍(91) 할머니는 “원당천은 물이 말라도 둑 밑으로 난 도랑에는 사철 맑은 물이 줄줄 흘렀다”며 “이곳은 빨래터이면서 목욕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주 대수해 때 마을이 물에 잠겨
1961년 7월 11일 영주에 큰 수해가 났다. 이날 새벽 3시부터 5시간동안 337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서천 물이 불어 당시 영주역의 서쪽 불바우 근처 부실한 제방을 무너트리고 시내로 범람한 것이다. 수마(水魔)는 영주역에 막혀 포교당 앞으로 내려가다가 현 오거리에 있던 영동선 굴다리(지하통) 밑을 통해 시내로 밀려들었다. 이영도(75) 씨는 “오전 5시경부터 서서히 스며든 물은 오전 7시경 분수대·구역·중앙초 지역은 한옥 추녀 밑까지 물이 차올랐다”며 “당시 떠 다니는 핏쪽뗏목을 타고 떠내려가는 가재도구를 건지는 풍광이 여러 곳에서 목격됐다”고 말했다.

박승창 회장은 “당시 행정당국은 시가지에 가득 찬 물을 빼내기 위해 9시 30분경 구안동통로 서쪽 100m 지점 원당천 제방 50여m를 잘라 물을 남산들로 내보냈다”고 말했다.

박정숙,임성남,김노미,이숙희 씨
손분홍, 오재윤, 강숙희 씨
류의열, 김현옥, 안정분 씨
중부노인정
중부노인정 표석
중부노인정 사람들

중부노인정 사람들
중앙초 후문에서 원당로 방향 80m지점에 중부노인정 표석이 있고, 골목 안으로 20여m 들어가면 노인정이다. 국기게양대 받침돌에 「노인정설립추진위원장 신숙자(13통장), 초대회장 박승창, 부회장 이종창·안정희, 총무 이영도, 감사 이두환·이만춘」이라고 새겼다.

이만춘(84) 어르신은 “우리마을의 오랜 숙원인 노인정 준공식 때 당시 김주영 시장, 장윤석 국회의원이 와서 축하해 주셨다”며 “이 때 국기게양대와 중부노인정 표석은 박승창 초대회장님께서 사비로 조성하셨다”고 말했다.

최병열(86) 회장은 “전임 박승창 회장님은 9년간 재임하면서 중부노인정을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시켰다”며 “중부노인정은 하루 평균 25-30명이 이용하는 모범 노인정”이라고 자랑했다.

김노미(86) 할머니는 “예전에 원당천 거렁에 물이 흐를 때는 둑 넘어로 가서 빨래를 했고, 버지기로 물 여다 먹고 살 때는 지금 같은 좋은 세상이 올 줄 몰랐다”며 “노인정을 잘 돌봐 주신 노인정 회장님과 총무님 그리고 유숙희 총무에게 고마운 마을을 전한다”고 말했다.

임승웅(82)·이두환(84) 어르신은 “나라에서 노인들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줘서 고맙기는 하나 인구가 줄고 아이들이 없어 걱정”이라며 “120여호가 사는 우리 노인정 주변 마을에 5년동안 취학아동이 1명도 없다고 하니 나라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순임(84) 여성감사는 “마을 옆 원당로에 원마트가 있고, 번개시장이 5일마다 열려 참 편리하다”고 했다. 정재연(82) 할머니는 “우리 노인정이 잘 돌아가는 것은 서로 돕고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유숙희 총무가 매일 밥하고 국을 끓여 어르신들을 잘 모신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노인정을 다시 찾았을 때 김현옥(84)·박정숙(85) 할머니 두 분이 대청소를 하고 계신다. ‘아, 이래서 잘 돌아간다고 하셨구나!’라고 생각했다.

최병열 노인회장
박승창 전 노인회장
김명동 부회장
정연희 부회장
이만춘 감사
이순임 여 감사
이영도 사무국장
이상철 15통장
유숙희 여성총무
정재연 할머니
임승웅 어르신
이두환 어르신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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