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유명 종합대학의 교수가 한 말로서 진위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따금씩 ‘정말일까’하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하고 곤혹스럽다. 30여년 전의 일인데도 잊혀지기는커녕 세월을 따라 오히려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80년대 경북사대에서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았다. 실명을 밝혀 송구스러운데 그 때 이윤수 교수의 교육학 강의를 들었다. 사십대의 약간 야윈 듯 호리한 체격에 숱 많은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선비풍의 학자였다. 이교수는 강의를 하기에 앞서 연수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강의를 듣게 하려는 듯 미국을 다녀온 얘기를 시작했다. 아마 귀국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했다.

까닭은 모르지만 이교수는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대학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 같다. 한번은 총장을 만나고자 총장실을 찾아 나섰다. 우리나라 대학이라면 총장실을 찾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총장실이라면 으레 본관 건물의 중심 위치에 있다. 이 교수는 한참이나 이곳저곳 다니다가 물어서 총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큼 총장실이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시선에 쉽게 드러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총장실이 후미진 곳에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실내에 들어섰을 때 이교수는 한번 더 놀랐다. 우선은 총장실의 크기가 예상보다 작다. 지금껏 보아온 우리나라 대학 총장실의 면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뿐더러 총장의 지위와 권위를 보아서도 고급스러운 사무집기들을 갖추어야 할 텐데도 소박하기 그지없더라는 것이다. 궁금증을 참다못해 기어이 이교수가 물었다.

“총장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지는 않은 것 같네요. 총장실의 크기와 시설도 생각 밖인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총장이 “이런 곳에 총장실이 있고, 사무실이 화려하지 않다고 해서 학생들의 교육에 지장을 주는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라고 뜻밖의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교육자다운 말이었다. 총장으로서 지위와 권위에 집착하지 않는 겸허한 태도를 여실히 알 수 있다. 하버드대학이 명문으로서 명성을 지켜 오는 까닭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교수도 하버드대학의 총장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 듯 감동어린 어조로 차분하게 얘기했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학들의 총장실이 반사적으로 대비되었을 것 같다. 총장뿐만 아니라 보아온 각급 지도계층의 집무실이 머릿속에 그려졌을 것이다.

잊어도 될 일화에 지나지 않지만 본분을 외면한 채 권력을 남용하고 지위를 과시하면서 외형적으로 거창하게 꾸미기에 급급한 우리 사회의 일부 지도계층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명문대학이 서울대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 대학 순위는 50위 안에도 못 들었을 뿐 아니라(영국 타임즈고등교육, ‘19년)노벨상을 수상한 교수는 한 사람도 없어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빗대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요즈음 서울대 교수들의 잇따른 논문표절 의혹이 보도된다. 일부일 테지만 우리나라 최고 명문인 서울대학교 교수들도 논문을 표절하는 교수답지 않은 황당한 소행을 저지르나 싶어 실망과 놀라움을 느낀다. 대학의 내부조차 이제는 표절을 자행하는 대학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서울대에 만연한 논문표절을 알고도 남는다.

강연과 방송 출연, 신문 기고 등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의 저명 교수가 논문표절을 의심받아 사직했고, 국어국문학과의 어느 교수도 표절문제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결과를 기다리는 처지이다. 지난해에는 총장 최종 후보로 선정된 의과대학 교수가 성희롱과 표절 때문에 자진사퇴했다. 부끄럽게도 서울대도 표절의 청정지역이 아닌 모양이다.

서울대의 어느 교수는 최근 ‘서울대 교수의 표절, 자기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작금의 표절 사건들은 오래 쌓인 인문대의 고질이 비로소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한두 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전반의 문화와 관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에 한번 판을 크게 흔들어서 도약의 전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내보인 셈이다. 서울대 일부 교수가 그런 실정인데 믿음이 가고 우러러 볼 사람이 누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웃나라는 2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자 대부분은 대학교수이다. 지방대학의 교수도 있다. 부럽고도 시샘이 난다. 학자로서 물욕과 명예욕 같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생애를 걸고 학문에 정진한 결과일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학자로서의 귀감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까. 최고의 명문대학교 교수들이 논문을 표절하고서도 반성 없이 오늘까지 왔다. 노벨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공허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30여년 전에 들었던, 하버드대 총장실을 찾아갔던 이교수의 일화가 되살아난다. 잊어도 되는 일인데도. 우리에게도 그런 총장이 있을까. 외진 곳의 소박한 집무실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최우선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총장이 형언할 수 없이 존경스럽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