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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의 무이구곡에서 따온 홍교(虹橋)-홈다리우리마을탐방[241]안정면 단촌2리 홈다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4.07 13:25
  • 호수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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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안만윤(순흥인)이란 선비가 마을개척
홍교의 전설, 샘에 동제, 토담집 원형 보존마을

홈다리 마을전경
홈다리 마을전경

 

홈다리 마을회관

안정면 홈다리 가는 길
홈다리 마을은 안정면의 최북단에 있다. 풍기읍 미곡리, 순흥면 태장3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소백산 원적봉에서 발원한 홍교천(虹橋川)이 마을 앞을 흐른다. 

서천교 건너 서부사거리에서 창진리 방향으로 간다. 창진삼거리에서 슈퍼 우측 길로 접어들어 오계2리 보치골-오계1리, 학교마을-단촌1리, 백골-대평리 대평못을 지나면 왼쪽방향 산 중턱에 보이는 마을이 유서 깊은 홈다리 마을이다. 지난 달 23일 홈다리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김춘진 이장, 김인기 노인회장, 이규현 부녀회장, 황부섭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홍교마을
안정면의 동쪽 단촌리 지역은 조선시대 때 풍기군(豊基郡)에 속한 마을들이다. 풍기는 통일신라 때 기목진(基木鎭)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기주(基州),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기천현(基川縣)이 됐다가 1450년 풍기군으로 승격됐다. 

조선 중기(1700년)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홈다리 지역은 풍기군 동촌면(東村面) 단촌리(丹村里)에 속해 있다가 조선말1896년(고종33) 행정구역를 13도제로 개편할 때 동촌면 홍교동(虹橋洞)이 됐다. 당시 마을의 인구가 크게 늘어나 독립된 행정구역이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풍기군에 속해있던 동촌면, 생현면, 용산면을 안정면(安定面)으로 통폐합했다. 

또 풍기군 동촌면의 회송동(檜松洞,저술), 홍교동, 단촌동을 합쳐 단촌동(丹村洞)이라 하고 안정면에 편입시켰다. 1980년 영풍군 안정면 단촌2리, 1995년 영주시 안정면 단촌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춘진 이장은 “조선말에서 6.25 후까지 40여 호에 300여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도시진출, 1980년대 이후 농촌인구 감소로 현재 18호에 3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됐다. 마을이 작은 만큼 온 마을이 한 가족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홍교(虹橋)

지명유래
마을 앞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가 있다. 이 콘크리트 다리 이름이 홍교다. 다리목 표석에 ‘단촌2리 홈다리 虹橋’라고 새겨놓았다. “홈다리가 무슨 뜻이냐?”고 여쭈니, 김인기(79) 노인회장은 “원래 홍다리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홈다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 마을 안상근(75) 씨는 “홍교(虹橋)란 무지개다리다. 저의 10대조 만윤(晩玧) 할아버지께서 지은 이름”이라며 “당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반달처럼 굽은 나무다리를 놓고 무지개 홍(虹)자에 다리 교(橋)자를 써 홍교(虹橋)라 했다”고 말했다. ‘홍교’는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무지개다리’다. ‘이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가 있었다니?…’

김춘진 이장은 “현재 콘크리트 다리 (2004년) 준공 당시 관계부서에서 ‘단촌교’로 정했으나 안상근 씨 등 마을 원로들이 옛 홍교의 유래에 따라 ‘홍교’로 정할 것을 건의하여 ‘홍교’로 결정 됐다”고 말했다.   

단촌(丹村)과 저술(著述)
‘단촌’이란 지명은 옛 순흥부 단을촌(丹乙村)에서 유래 됐다고 한다. 순흥지에 보면 「순흥부 대평면(大平面) 단을촌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곳은 원래 순흥 땅이었는데 순흥부가 폐부되었다 회복된 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홈다리와 백골 사이에 ‘저술’이란 마을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273호 단촌리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전나무와 소나무 등이 많아 회송(檜松)이라고도 부른다.

예전에 이곳에 선비들이 모여 글을 짓고 책을 저술했다 하여 마을 이름이 저술(著述)이 됐다고 한다.     

순흥안씨 입향과 홍교(虹橋)
경북지명유래총람에 보면 「약 300년 전 안만윤(安晩玧,순흥인)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했다. 옛날 중국의 주자(朱子)가 구곡에서 선동(仙洞)을 찬양한 홍교일촌(虹橋一村)이라는 문구를 본따 홍교(虹橋)라 칭하고 ‘무지개다리’를 놓았다」고 했다.

입향조 안만윤의 후손 안상근(75) 씨는 “저의 10대조 만윤(晩玧,1690-1780) 선조는 안향(安珦) 선생의 12세손이고, 서파(西坡) 안리(安理,1393~?) 선조의 7세손”이라며 “안정 용산에서 1710년경 이곳으로 이거하여 마을을 개척하신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안 씨는 또 “당시 학문이 깊었던 만윤 할아버지는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 중 제1곡에 나오는 ‘홍교(虹橋)’에서 이름을 따 마을이름을 ‘虹橋(홍다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중국 고서(古書)에 진시황(기원전 259-210) 2년 가을에 무이군(武夷君)이 무지개다리(虹橋)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옛 토담집(판담집)
옛 샘터

선조들이 남긴 샘(泉)과 토담집
홈다리 마을은 옛 샘의 전설이 있고, 100년 전에 지은 토담집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마을은  비스듬한 경사면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중간에 동샘이 있어 예전에 40여 가구가  이 샘물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20년 전부터 홈다리에서 살았다는 최종열(83) 어르신은 “홈다리는 산비탈에 마을이 형성되어 물이 귀했다”며 “마을 중간에 샘이 있었는데 모두가 이 샘물을 먹고 살았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물이 좋아 살러오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춘일(73) 씨는 “산비탈에 위치해 물이 귀해서인지 우물을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냈다”며 “해마다 정월 초칠일이 되면 도가(都家)를 정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제관을 정한다. 그리고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정월대보름날 자시(子時)에 동제를 지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을에는 옛 토담집이 여러 채 있다. 이 토담집은 돌과 흙을 재료로 담쌓듯 벽을 쌓아 지은 집이다. 

이 마을 황부섭(67) 씨는 “저의 조부님께서 지은 토담집이 지금도 마을에 4채나 남아있다”며 “예전에 문짝 같은 것으로 담틀을 만든 다음 그 사이에 콘크리트 비벼 넣듯 흙을 비벼 넣어 벽을 만든 다음 초가지붕을 덮으면 토담집이 완성된다. 이렇게 지은 토담집을 판담집이라고도 하는데 벽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흙, 자갈, 모래, 큰돌 작은돌 등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홈다리 사람들
감남등(감나무등)
입향조 안만윤의 묘

 

다함께 점심시간

홈다리 사람들
김춘진 이장과 약속을 하고 12시 30분경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이날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점심식사를 하려고 하는 참이다.

이규현(62) 부녀회장이 “기자님이 오신다기에 시간을 조금 늦췄다”며 “반찬은 없지만 많이 드시라”고 했다. 콩나물 무침에 풋나물 겉저리에다 봄내음 물씬나는 나물반찬 등 토담음식으로 상이 그득하다. 다 먹은 후 “설 날 이후 제일 잘 먹었다”고 인사했다.

손옥희 씨

(70) 씨는 “마을이 작은 만큼 오붓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산다”며 “겨우내 회관에 모여 민화토 치고 밥해 먹고 재미있게 놀았는데 이제 일철이 시작됐다”고 했다.

부석 북지에서 홈다리로 시집왔다는 류정욱(83) 할머니는 “그 때는 모두 가마타고 시집갔고, 초가 토담집에 살았다”며 “새댁시절 버지기에 물이고 언덕빼기를 오르던 일이 꿈결 같이 지나갔다.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봉화 춘양에서 시집왔다는 박봉흠(87) 할머니는 “봉화서 트럭 타고 어디까진지 와서 거기서 가마타고 마을에 도착했다. 산비탈에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랫집 윗집 정나누며 살던 옛날이 그립다”고 했다.

김정희(87) 할머니는 “6살 때(1939) 아버지 따라 일본 가서 살다가 해방되던 해(1945) 돌아왔다”면서 “홈다리에서 메끼실로 시집갔는데 다시 홈다리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홈다리는 산좋고 물좋고 공기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송옥자 씨

마을에서 젊은 새댁으로 통하는 송옥자(64,반장) 씨는 늘 어르신들의 손이 되고 눈이 되어 드린다. 할머니들은 “이장댁, 반장댁, 부녀회장댁 모두 천사(天使)들”이라고 말했다. 

회관에서 나와 김인기 노인회장과 동네 한 바퀴 돌았다. 샘이 있던 자리, 입향조 묘소에도 가보고, 토담집 벽을 만져보기도 했다. 예전에 풋굿 때 감남등에 모여 징치고 장구 친 이야기도 들었다. 

이 때 갑자기 폭설이 쏟아졌다. 꽃샘눈을 맞으며 홍교천 설경을 감상했다.

김춘진 이장
김인기 노인회장
이규현 부녀회장
황부섭 새마을지도자
박봉흠 할머니
김정희 할머니
최종열 어르신
류정욱 할머니
안상근 씨
김춘일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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