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 시조시인·본지논설위원)
우리는 식사 무렵 만나는 상대를 향해 “식사 하셨습니까?” 라는 말로 인사를 한다. 이는 삼시세끼를 다 챙겨 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 끼니마다 빠뜨리지 않고 먹는 가정이 적었던 사회적 환경 때문에 생기게 된 인사말로 보여 진다.
그러고 보면 이 인사말에는 상대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있는 말인데 이제는 굶는 사람이 없는 세월이라 이런 인사는 필요 없게 되었지만 상대가 먹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묻는 말이 되었다.
한 번 자리 잡은 인사문화는 쉬 바뀌지 않아서 식사 무렵 만난 사람에게 “식사 하셨습니까?” 로 인사하지 않으면 결례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식사 하셨습니까?” 라는 인사말이 생겨난 그 시절 사람들에게 식사는 생존의 최우선 순위였다. 식탁이 풍성하거나 빈약함을 떠나서 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밥 조밥을 안 가린다.’ 거나 ‘찬밥 더운밥을 가리랴.’ 라는 시세 말이 이를 잘 대변하는 말이다. 그 시대 사람들의 경제활동의 목표가 굶지 않기 위해, 많이 먹기 위해, 내일도 또 먹기 위해, 좀 더 좋은 것을 먹기 위해, 나아가서 내 혈육에게 먹이기 위해서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먹을 것의 빈곤은 우리만의 과거가 아니라 나라마다 빵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식구들의 행복한 모습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식량에 대한 인식이 이쯤 되니 먹을 것을 확보한다는 것은 성공을 의미하며 재력의 상징이 되었다. 좋은 음식으로 주변을 초대하는 것은 재력의 과시였고 주변을 넘어 지인을 초대하는 것은 권력의 상징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리 먼 시절이 아니어도 점심은 먹어도 그만 건너도 그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점심은 점찍듯 약간만 걸쳐도 되기 때문에 점심이라 한다는 농 같은 말도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점심까지 갖추어 먹을 수 없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여류시조시인 이영도는 ‘보리 고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흘 안 끊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몰래 솥을 열어 보네. (보리 고개 전문)
감꽃으로 배를 채우려던 아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몰래 솥을 열어보지만 사흘 안 끓인 솥 안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너무도 서글픈 이 광경은 우리의 과거 자화상이다.
시인이 1945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니 이렇게 굶던 시절은 겨우 60여 년 전후의 일이고 시 속의 아이는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 가난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찾던 우리는 이제 풍요의 세태를 맞아 가난의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풍성한 식탁을 동경하게 되었다.
좀 더 근사한 먹거리를 찾고 좀 더 기이한 식자재를 탐하며 맛과 향이 우수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미각을 세우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맛으로 소문난 집을 전국적으로 찾아다니며 방영하고 맛의 비법을 소개하며 맛에 대한 탐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더 좋은 먹을 것을 향한 투자와 찬사는 얼마든지 좋다. 높아진 생활수준에 맞추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남녀노소에게 재미를 끌고 있는 먹방 이라하는 먹는 방송을 보면 걱정스럽다. 먹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질을 삽질하듯 하고, 입이 터지게 쑤셔 넣는 게걸스러운 식사 모습이나 10인분도 넘을 음식을 혼자서 먹게 하면서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보여주는 방송의 무례함에 입맛이 씁쓸하다.
한 사람이 엄청난 양을 먹느냐 못 먹느냐 기록을 세우는 장난같은 장면을 자라는 아이들이 보면 어쩌나 참으로 걱정스럽다.
과식의 능력은 자랑이나 권장사항이 아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기록경신의 대상이 되거나 오락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모금의 물이 없어 생명이 꺼져가는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고 끼니를 걱정하는 안부인사가 생길 만큼 때 꺼리가 없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면 먹을 것 앞에서 경건해야 할 것이다.
사람도 음식에게 지킬 예절이 있다는 것이다. 필요 이상 먹은 과식음식은 누군가의 몫이니 이것도 종교계에서는 죄악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래저래 먹방을 보는 것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