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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프리즘[126] 블랙 코미디권서각(시인·문학박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3.07 13:02
  • 호수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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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코미디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의 한 갈래다. 1940년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블랙 유머 선집’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블랙 유머, 블랙 코미디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인간과 세계의 모순성, 부조리함을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유머를 사용한다. 희극이지만 마냥 웃기만 할 수 없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그러하다.

우리 근·현대사에도 블랙 코미디 같은 장면이 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은 탐관오리의 대명사다.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했다. 조병갑의 학정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녹두장군 전봉준의 휘하에 들어가 고부 관아를 공격하면서 동학농민전쟁이 시작되었다. 조병갑은 몸을 피해 살아남았으나 제주에 유배된다.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동학군이 패했다. 전봉준도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도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해월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장이 전 고부 군수 조병갑이다.

김구 선생과 함께 상해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심산 김창숙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앉은뱅이가 되었다. 스스로 앉은뱅이 늙은이라는 뜻의 벽옹(躄 翁)이라는 아호를 쓰셨다. 두 아들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해방 후에는 유림들의 재산을 헌납 받아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총장이 되셨다. 유학의 중흥을 통해 선비정신을 바로 세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도 잠시 이승만이 보낸 정치 깡패들에 의해 총장직에서 물러나서 여관을 전전하는 처지가 되었다. 생계는 택시 운전을 하는 셋째 아들이 이어갔다. 의성 김 씨라는 인연으로 말년에는 봉화 바래미에 기거하시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심산의 뒤를 이어 성균관 대학 총장이 된 사람이 이명세다. 이명세는 일제 때 조선유림연합회 대표로서 침략전쟁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친일파였다. 해방이 되어도 해방이 된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사람이었다. 식민지 침략의 본거지와 침략 원흉을 폭탄으로 응징했다. 일제는 김원봉에게 김구 선생보다 많은 현상금을 걸고 잡으려 했다. 그는 끝까지 잡히지 않고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1947년 3월, 일제 때 고등계 형사로 악명 높은 노덕술에 의해 좌익 혐의로 체포되었다. 억울해서 사흘을 울었다 한다. 1948년 김구 선생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갔다가 북에 남았다.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다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가장 열렬한 독립투사가 해방 후에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찬밥 신세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는 두 부류의 조선인이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본의 앞잡이가 그들이다. ‘간도토벌대’는 독립군 잡는 대표적인 일본의 앞잡이다. 혈서를 쓰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일본군 장교가 되어 간도토벌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사람은 해방 후에 통치자가 되고 애국자가 되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쫓기던 독립투사는 타국의 감옥에서 쓸쓸히 죽고 후손들은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블랙 코미디와 다르지 않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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