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나이를 말하는,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설(說)도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 하고,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고도 말합니다.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인 설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경민족입니다. 농사를 지어야 살 수 있고 종족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농사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고 우리민족의 생명줄이었습니다. 농사는 봄에 씨를 뿌려 여름 내내 가꾸고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힘겨운 일입니다. 농사는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고문헌에 보면 농공시필기(農功始畢期), 곧 농사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하늘에 제사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고(迎鼓), 무천(舞天), 동맹(東盟) 같은 행사가 그것입니다. 며칠 동안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飮酒歌舞)고 하니 제사의 행위가 곧 축제(Festival)라 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시작할 때는 농사를 잘 되게 해 달라고, 농사가 끝났을 때는 결실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지냈던 것이지요.

농사를 짓는 사이사이에도 크고 작은 축제가 있었지만 생활 패턴이 바뀜에 따라 다른 축제는 사라지고 농사를 시작할 때의 설과 추수 무렵의 한가위만 가장 큰 명절로 남아 있습니다. ‘설’이란 말이 어디서 유래했을까요? 먼저 ‘섧다’, 곧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것으로 이는 삼가고 조심하는 날, 곧 몸과 마음을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이지요. 나이를 말하는,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설(說)도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 하고,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고도 말합니다.

어린 시절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설날이었습니다. 설이 되면 설빔이라 불리는 새 옷을 입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새 옷 냄새는 언제나 설레게 합니다. 어머니가 장에서 사 오신 새 옷을 머리맡에 두고 몇 번이고 냄새를 맡곤 했지요. 설날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면 세뱃돈도 받을 수 있었지요.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동네 어른들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세배를 했는데 세배를 마치면 다과상을 내오고 덕담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평소에 하시지 않던 ‘도령’이라는 말씀도 하시곤 했지요. 우리 집에서 일하시던 분은 소에게도 설빔을 선물했습니다. 소의 등에 덮는 삼정에 천을 엮어서 따뜻한 삼정을 만들어 주고 목에 두르는 굴레는 알록달록한 헝겊으로 장식을 해 주었습니다. 일 년 내내 함께 일할 동지에게 주는 따뜻한 설빔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춘절이라 하여 한 달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축제 기간이었지요. 어른들은 토정비결을 보거나 윷놀이 등의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름 안에 일하는 사람을 보면 “게으른 농부 정월 초하룻날 지게 지고 산으로 간다.”고 핀잔을 추곤 했습니다.

여자들은 널뛰기, 아이들은 연날리기, 팽이치기, 얼음지치기 등의 놀이로 정초를 보냈지요. 그렇게 놀이로만 보름을 지내다가 보름이 되면 날리던 연의 줄을 끊어 멀리 보냈습니다. 정월 보름날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하며 달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일만큼이나 놀이나 축제가 소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보름이 지나야 어른들도 비로소 농기구를 손에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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