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 본지논설위원)

새해에는
이 땅에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해 주소서. 포성이 산하를 뒤흔들세라 칠십여년이나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살아, 이제는 전운을 말끔히 걷어 햇살이 누리에 쏟아지도록 기원해 주소서.

새해에는
‘갑’과 ‘갑질’ 때문에 분노하는 일이 없도록 기원해 주소서. 일부의 재벌가와 그들의 가족, 일부 경영자들이 돈을 많이 가져 그 때문에 이따금씩 광기를 부리듯 날뛰는 일이 사라지게 해 주소서. 가진 것이 저만 못한 사람들을 하인으로 보는 듯, 안하무인으로 자행하는 오만한 소행에 가차 없이 죄 값을 주소서. 그들의 못된 소행이 창업주를 욕되게 하므로 갑질하는 갑은 못난 후손으로 전락하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전속 운전기사에게 입에 못 담을 상스러운 말과 폭언을 쏟다가는 손찌검을 하는 경영자도, 종업원을 볼기에 곤장을 치듯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매 값 명목으로 돈을 주는 경영자가 없도록 해 주소서. 금력에 눈이 멀어 비유적으로 불량배가 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소서.

갑질은 말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 겁내도록 법집행을 엄격히 해 주소서. 사법당국조차 금력에 주눅이 들었는지 갑질을 벌주는 데에 미적거리고 눈치를 보는 듯이 실망스런 모습을 안 보도록 해 주소서. 갑질에는 오직 벌이 있을 뿐이라는 현실을 보여 주소서. 경우에 따라서는 갑이 자행한 갑질만큼 물리적인 대가를 주는 방안도 고려하소서.

새해에는
금력이든 권력이든 가진 자가 갑이 되어 무시로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갑질을 뿌리는 뽑고 근원은 막아 주소서. 갑이 스스로 을을 배려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우므로 갑질을 자행하면 기필코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철칙을 세워주소서. 어쩌면 갑이 인격적으로 사람이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르기에 다시는 갑질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단호하게 가중으로 벌을 받게 해 주소서.

새해에는
200년 전에 태어나 사망한 지 135년이 지난 한 개인의 사상을 추종하는 무모함을 깨닫게 해 주소서. 솜뭉치처럼 허연 수염을 늘어뜨린 그 사람이 신은 아니기에 그가 내세운 사상에도 오류와 모순이 있음을 알게 해 주소서. 저들이 신봉하는 이념이 지구촌에서 외면당한 현실에 눈 뜨도록 기원해 주소서. ‘증오의 철학’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함축한 의미를 다시금 반추해 보도록 해주소서.

성현들도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미가 있는 ‘개제(改制)’를 가르쳤다는데 경직된 이념 속에 갇힌 햇수가 반세기를 넘어 폐해가 막심한 그들의 현실을 직시케 해 주소서. 그들이 신주처럼 받들어 모시는 마르크스가 생전의 개인숭배와 사후의 우상화를 경계한 사실을 알게 해 주소서. 혈연의 끈을 거머쥐고 권력을 세습한 것은 저들의 이념을 창시한 창시자의 뜻에 어긋남을 깨닫게 해 주소서.

정치는 주민들이 배부르고 마음 편히 사는 데에 목적이 있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해 주소서. 주민들이 굶주리면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기는 어려운 것을 알게 해 주소서.

어느 교수는 저서에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람을 결속시키는 힘은 ‘같은 처지’라고 했는데 새해에는 북녘도 빗장을 풀고 대문을 활짝 열어 주민들이 자유의 대기를 마음껏 숨 쉬기를 기원해 주소서. 그들의 삶이 우리와 똑 같을 수는 없을지라도 시나브로 시장경제의 싹이 돋아 무성하게 자라 짙푸른 숲을 이루도록 기원해 주소서.

새해에는
여의도의 의원 삼백명. 입법은 팽개치고 특권과 이권, 당리당략에 눈독 들여 무늬만 의원인 일부 의원들을, 감정적인 표현으로 빗자루로 쓸 듯 모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추방해 주소서. 훈장이 책읽기에 게으른 학동들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듯이, 매질을 하여 정치인으로서 철이 좀 들게 해 주소서. 의원으로서 꿈과 희망을 주도록 간절히 기원해 주소서.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같은 AI를 의원으로 삼아 국회 일을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여 존경받는 미더운 의원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애원하듯 거듭 기원해 주소서.

그들이 막말을 못하도록 입막음을 단단히 해 주소서. 막말을 들어 멀미가 날 듯 역겹고 뱃속이 울렁거리는 불편이 없도록 기원해 주소서.

새해에는
국토가 초토화되고 이산가족이 혈육을 그려 눈물짓게 한 이들이 과거를 돌아보도록 기원해 주소서. 언제 또 변심하여 ‘서울 불바다 위협’을 할지 알 수 없기에 저들의 속내를 샅샅이 꿰뚫어 보는 지혜가 있기를 기원해 주소서.

새해에는
이 땅의 허리를 감은 철조망이 걷히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해 주소서. 평화는 두 사람이 미소 띤 얼굴로 주고받는 듣기 좋은 말뿐만 아니라 안보가 한층 더 튼튼하고 확실하여 그들이 우리를 넘볼 수 없을 때 온다는 사실을 되새기도록 기원해 주소서.

새해에는
남이든 북이든 갑이 사라진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와 칠천만을 솜이불처럼 따뜻하게 품어 주어 발 뻗고 잠자도록 두 손 모아 아낌없이 기원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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