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라는 시의 마지막 행이다. 요즘 다시금 이 문장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 주위에는 조금만 생각해도 옳고 그름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옳은 것을 자꾸만 그르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 문장이 떠오르는 것은 이런 말들이 횡행하는 언어의 풍경 때문일 것이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다. 일반 시민의 성금으로 이루어진 이 사업은 친일파 후손들의 고소고발 등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15여년 만에 간행되었다. 나라가 해야 할 당연한 사업을 시민들이 해낸 것이다. 처벌을 해도 모자랄 친일 행위에 대해 그 이름을 공개하는 일조차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친일파를 밝히는 일을 반대하는 이들은 말한다. “일제 때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을 친일이라고 한다면 친일파 아닌 사람이 누가 있는가?” 틀린 곳이 없는 말처럼 들린다. 고백하건데 이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우리 역사를 알지 못할 때는 그랬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나 우리는 그 반대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세운 학교에서 정상적 교육을 받았는데 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몰랐을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노래는 ‘고향의 봄’, ‘희망의 나라로‘ 등의 아직도 애창되고 있는 곡들이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홍난파, 현재명인데 이들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음악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해방 후 홍난파는 방송국 지휘자로, 현재명은 서울음대 학장으로 우리나라 음악교육을 담당했다.

해방 이후 수립된 이승만 정권은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친일파들이 장악했다. 우리는 해방 후 학교를 다니면서 친일파들이 구성한 교육과정으로 친일파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홍난파, 현재명의 노래만 있는 줄 알았다. 그들이 만든 음악교과서엔 친일파의 음악과 서양음악만 있고 우리음악인 국악은 없었다. 우리가 모든 행사에서 부르는 ‘애국가’도 친일파 안익태의 곡이다. 우리 국가는 국악풍의 노래여야 함에도 루마니아풍의 곡이라는 논란도 있다.

안익태는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동경, 베를린 등에서 활동한 재능 있는 음악가였다.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 수립을 찬양하는 교향곡 ‘만주 판타지’를 작곡하여 연주했다. 해방 후 이를 약간 수정하여 ‘코리아 판타지’로 바꾸었다. 이 교향곡에 삽입된 합창곡이 ‘애국가’다. 에키타이 안은 일본과 연합한 나치정권에 협력했다는 논란도 있다. 이보다 더 친일파일 수는 없다.

이승만은 국회에서 구성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에 따라 구성된 반민특위를 해체했다. 이후 친일파는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었다. 친일파의 후손이 승승장구한 것과는 달리 독립투사의 후손은 주변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사회가 병든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친일파가 만든 노래를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우리의 모습이, 병들었으나 아프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 100주년을 맞아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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