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 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며칠 전 텔레비전 화면에 비행기가 하늘을 날면서 구름씨앗을 뿌리는 장면을 보았다. 이른바 인공강우 실험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상에 없던 낱말 ‘미세먼지’를 잡기 위하여 사람의힘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실험이라고 한다. 성공과 실패 여부는 며칠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나 성공여부를 떠나 인간이 비를 만들겠다는 상상과 시도하는 현실이 참 놀랍다는 생각이다.
우리들이 학생이던 시절에는 유난히 춥고 더웠다. 치산치수(治山治水)를 못하던 시절이라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생활용수는 물론이고 농업용수가 없었다. 거북이 등같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농부들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연례행사처럼 가뭄이 들면 국군들이 와서 마른 개울에 웅덩이를 파서 물길을 찾았고 학생들이 세수 대야를 들고 논으로 동원되었다. 불같이 뜨거운 뙤약볕아래 교복을 입은 채로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물대야를 옆 사람에게 전달해서 마지막 사람이 논바닥에 부었다. 먹고사는 일이 걸린 일이라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던 그 때, 마른하늘을 쳐다보며 천지가 개벽을 해서 비가 내리는 기계를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턱도 없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즈음 일본에서는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전기세탁기로 빨래한다는 말을 듣고 달나라 이야기라고 믿지를 않았었다. 나무를 때서 밥하던 시절, 불 조절이 어려워 툭하면 3층 밥이 되고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연기가 매워 눈물 반 콧물 반이던 시절, 밥하는 전기밥솥을 한 번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전기로 밥하고 빨래하는 세상을 꿈꾸고 전기로 방이 따뜻해지는 턱도 없는 꿈을 꾸기도 했다.
딸만 내리 여섯을 낳고 돌아 앉아 우는 산모를 보기가 너무 딱해서 아들만 골라 낳을 수는 없을까, 아들만 생기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신의 영역을 넘보기도 한 시절이 있었다. 이 또한 턱도 없는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아기의 성별은 물론이고 얼굴과 체형, 감성과 지능까지 주문생산이 가능하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과학계에선 현실이 되어 있다.
가장 젊고 아름다울 때 캡슐 속에 들어가서 멈추어 있다가 수백 년 뒤에 다시 캡슐에서 나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쇼킹한 상상이었지만 상상의 모든 것이 현실로 되는 세상이라 언젠가는 가능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입으로 도는 것이 실현에 필요한 기간은 다르지만 다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필요한 것은 상상하게 되고 상상한 것은 언젠가 현실이 되는 것이 과학의 힘이다.
이 외에도 생활에서 이미 우리는 턱도 없는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보아왔다. 편하게 쓰고 있는 발명품이 있기 전에 그것은 턱도 없는 상상에 불과 했던 것이다. 하늘만이 할 수 있고 신(神)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 많은 일들이 인간의 상상을 거쳐 인간의 힘으로 현실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이쯤서 또 한 가지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아스피린 같은 작은 약 한 알만 먹으면 한 일주일 식사를 안 해도 활동에 지장이 없는 세상은 안 오려나. 웃기는 상상 같지만 매끼 밥하는 여자들로서는 절실한 상상이다. 상상은 죄가 없지 않는가? 마른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여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처리하는 세상인데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다. 식탁문화가 어떻게 변하든 그런 세상이 머잖아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