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고려시대의 가전체소설 『국순전』과 『국선생전』은 모두 술에 인격을 부여하여 출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했다. 하지만 술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는 상반된다.

『국순전』은‘술은 아첨과 불의로써 분수에 넘치는 행위를 하고 물러날 때 물러나지 않으면서 나라를 어지럽혀 비웃음을 사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렸다. 반면 『국선생전』은‘선생’이라는 존칭에서 짐작하듯‘순후한 덕과 맑은 재주로 임금의 심복이 되어 나라 정사를 짐작하고, 임금의 마음을 윤택하게 함에 있어 거의 태평한 경지의 공을 이루었으니 장하도다.’라고 술을 예찬한다. 술의 양면성, 순기능과 역기능의 명암을 보여준다. 원래 술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식품이었을 것이다. 제례에서는 조상님께 술을 바치고, 혼례를 올릴 때도 신부와 신랑은 술잔을 주고받아 백년의 인연을 맺는다. 최고 권력자들의 회담에서도 건배를 한다.

20년대, 미국은 국법으로써 술의 제조, 판매, 소지, 음주를 금지했다. 그러나 금주법은 외면당하고 범법자를 양산했다. 알 카포네라는 범죄단체의 두목은 밀주를 만들어 부와 권력을 장악하여‘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랏법으로 금지해도 술이 인간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가의 공권력으로도 술을 근절시키지 못해 결국‘밤의 대통령’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에 관한 한 술은 비유적으로 저승길을 안내하는 저승사자라고 말해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차량들이 넘쳐나는 거리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저승사자를 불러 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음주의 분량을 측정하여 수치를 따질 것이 아니라 한 방울이라도 마셨다면 핸들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음주운전을 하여 사망사고를 일으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로 간주해도 될 것 같다. 미국 워싱턴 주는 음주운전 때문에 피해자가 사망하면1급살인자가 되어 징역50년에서 종신형을 받는다. 대리운전도 있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술기운이 온 몸을 뜨겁게 달구어 정신도 신체기능도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음주운전은 말대로 잠재적 살인행위이다.

우리는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소주 같은 독주를 마시는 나라로서는 최상위 자리를 오르내린다. 음주운전이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그만큼 크다. 일본은 음주운전자와 동승자, 술을 판매한 사람과 술을 권한 사람까지 처벌한다. 러시아는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농도가0%를 넘으면 단속한다. 열쇠를 가진 음주자가 시동이 꺼진 차량의 운전석에 앉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되는 나라도 있다. 불가리아는 음주운전 재범자는 교수형에 처한다. 교수형은 말만 들어도 으스스하여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음주운전을 무거운 범죄로 여겨 엄하게 다룬다는 점은 되새겨 볼만하다.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08년에서’17년까지10년 동안25만여 건의 음주운전사고가 발생해7천여 명이 사망하고45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지난해에는 음주운전 사고가19,517건 발생하여 사망자439명에33,364명이 부상을 입었다.

몇 년 전, 이른바‘크림빵 교통사고 사망자’가 보도되었다. 임신7개월인 아내에게 주려고 크림빵이 든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십대의 남편이 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였다. 애초 케이크를 사려 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크림빵을 사서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람을 쓰러뜨리고도 뺑소니친 것을 보면 가해 운전자는 음주를 했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19일이 지나서야 자수한 뺑소니 운전자는 음주를 측정해도 반응을 하지 않기에 음주운전은 무죄였고, 사람을 사망케 하고 뺑소니를 쳤는데도 고작3년형을 선고받았다. 희생자에 견주어 뺑소니 가해자가 받은3년형은 어처구니없이 가벼운 형벌이어서 누구를 위한 법인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피해자를 외면하고 가해자에게 턱없이 관대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당하면‘피해자의 유가족은 울고 가해자는 웃는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알 것 같다.

한 유명 여배우의 남편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갓길에 정차한 트럭을 들이받아 함께 탄 젊은 여성 두 사람이 사망했다. 거의 만취가 되어 면허취소 수준이었는데도 운전대를 잡은 만용 때문에 꿈 많은 젊은이가 생명을 잃어 부모의 가슴에 묻혔다. 저명한 공연기획자로서 음주운전의 위법성을 알고 실행하는 상식이 있을 텐데도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술을 마셨으므로 당연히 운전을 자제해야 하는데도 무엇을 믿어 핸들을 잡았는지 무모한 호기를 거듭 지적하고 싶다. 위험한‘자기과신’의 함정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젊은이의 목숨을 빼앗은 여배우의 배우자에게 술은 『국순전』에 등장하는 못된 술이 분명하다. 하지만 술은 죄가 없다. 마시는 사람에 따라 미덕을 베풀거나 고의적인 살인이나 다름없는 무거운 죄를 짓게 할 따름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