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문화가 융성하고 풍속이 아름다운 나라다. 다음은 사회 구성원들이 높은 도덕성을 가진 나라다. 다음이 법이 바르게 선 나라다. 풍속이 아름답거나 도덕적인 나라는 사실 법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런 나라는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어 당장에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 못한 시대를 사는 시민들은 억울할 때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필요하다. 그것이 법이다. 법이 무너지고 무법천지가 되면 힘이 없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조차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법은 시민의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다. 권력자에게는 가깝지만 약자에게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최근 법관들 스스로 법을 바로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의 6명의 판사들이 법관대표자회의에 ‘사법농단법관에 대한 탄핵촉구 결의안’ 논의를 요청했고 법관 대표자회의는 이 안을 의결했다.

우리고장 판사님들이 스스로 사법농단을 한 판사들을 탄핵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법은 시민의 편이 아니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쌓인 상태다. 그럼에도 우리는 법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랐다. 법의 존엄성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이 신성불가침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드러난 사법농단 사태는 그런 믿음을 무너뜨렸다.

정권이 바뀌고서야 법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다. 군사독재시절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 사건들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가 선고되는 것을 보며 아직은 법이 살아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서 사법농단을 한 사실이 여러 문건을 통해 밝혀지면서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이 검찰에 조사를 받고 기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법관 대표자회의는 이들 재판과는 별도로 탄핵소추권이 있는 국회가 사법농단 법관을 탄핵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법관들 스스로의 자정노력이다.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 이를 다루어야 할 국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대놓고 옹호하는 모양새다. 이들의 논리는 혐의만 갖고 여론몰이로 탄핵을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검찰수사에서 이미 모든 사실이 문서로 드러났다. 법원의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탄핵하는 것은 불가하다고도 한다. 아니다. 전직 대통령도 판결 이전에 탄핵이 미리 이루어졌다.

또 법관을 탄핵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한다. 삼권분립의 개념을 모르는 소리다. 삼권분립은 삼부가 각부를 서로 견제해서 서로의 독립된 권위를 갖게 하는 것이다. 사법부를 견제하여 바로 서게 하는 것은 국회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법관의 탄핵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논리는 궤변에 가깝다. 궤변은 논리가 아니다. 자기편을 무턱대고 옹호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일이다. 이미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을 내놓으라고 태극기를 흔드는 억지와 다르지 않다. 시민은 누가 바른 정치를 하는가를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그들의 궤변에 휘둘리면 우리의 권리를 그들에게 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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