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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三峯) 下 삼봉서원(三峯書院) 마을 ‘삼봉골(三峯谷)’우리마을탐방[224]이산면 신암1리 ‘삼봉골’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11.26 17:16
  • 호수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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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김·진성이·연안김 세 문중이 서원 건립
연당이 아름다운 구은고택, 도 문화재로 지정

삼봉골 전경
실래마을 전경

신암1리 삼봉골 가는 길
이산면 신암1리는 영주(신암리)와 봉화(문단리) 경계 지점에 있다. 상망교차로에서 파인토피아로를 따라 봉화방향으로 간다. 단운교차로를 지나 4km쯤 가다가 신암교차로에서 내려 내성천을 건너면 이산면 신암1리이다. 신암1리는 신암교를 기준으로 북쪽에 얼음골과 실래가 있고, 남쪽에 삼봉골이 있다. 지난 11일 신암1리에 갔다. 이날 얼음골에 있는 신암1리경로당과 삼봉골 구은고택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 삼봉서원의 역사와 구은고택의 내력을 듣고 왔다.

얼음골 전경

역사 속의 신암1리
예전에 삼봉서원이 창건될 무렵(1650년) 신암1리 지역은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말암리(末巖里) 우금방(友琴坊)이라 부르다가 1750년경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개편하면서 말암면 우금리가 됐다. 조선 내내 그대로 내려오다가 조선 말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말암면 우금동이 됐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이산면 신암1리가 됐다. 1980년 영풍군 이산면 신암1리, 1995년 영주시 이산면 신암1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승학 이장은 “예전에 이 지역은 두암(斗巖), 말암(末巖), 원암(遠巖) 등으로 불러오다가 일제 때 신암(新巖)이 됐다는 이야기를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다”며 “지금은 얼음골에 17가구, 삼봉골에 7가구, 실래에 6가구 등 30여 가구가 사는데, 독거 어르신들이 많은 편이면서 귀농도 7가구나 된다”고 말했다.

지명유래
예전에 이 지역을 ‘말암’ 또는 ‘머름’이라 했다. 머름에 사는 김원영(80) 어르신은 “옛날 삼봉골 앞에 말(斗)을 닮은 바위가 있어 말 두(斗)자에 바위 암(巖)자를 써 두암(斗巖)이라 불렀는데, 16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이곳 선비들이 말 두(斗)자에서 ‘말’자를 따고 바위 암(巖)자에서 ‘암’자를 따 ‘말암’이라 이름 짓고, 한자로는 말암(末巖)이라 적었다. 그 후 말암이 멀리서도 보인다 하여 먼암(遠巖)이라 부르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먼암’이 ‘머름’이 됐다”고 말했다. 김두영(72,삼봉골) 노인회장은 “옛 말암(末巖)은 연안김씨 집성촌이고, 실래는 함창김씨 집성촌이었다”며 “현 만취당 앞들에서부터 삼봉골 앞들-실내 앞으로 마을이 이어졌는데 ㅁ자형 기와집이 100여 채나 있었다는 이야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 예전에는 내성천이 석천(石川)이었으나 사천(沙川)으로 변하면서 범람 수해가 잦아 차츰 산쪽으로 옮겨 살게 됐다”고 말했다.

삼봉골(三峯谷)은 400년 전 이곳에 삼봉서원(三峯書院)을 건립하면서 자연스레 ‘삼봉골’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얼음골(氷洞)은 이 마을에서 장수골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겨울에 얼어붙은 빙판길이 봄이 돼도 녹지 않아 ‘얼음골’이라 부르게 됐다. 실래(新川)는 조선 말 내성천 홍수로 온 마을이 떠내려가자 마을 사람들이 물길을 돌리고 나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됐다 하여 ‘신내(新川)’라 불렀는데 발음이 변해 ‘실래’가 됐다고 한다.

 

삼봉서원 구지(舊址)

삼봉서원의 유래
삼봉골 초입에 북봉, 서봉, 남봉 등 세 봉우리가 우뚝하여 삼봉(三峯)이라 했다. 1650년(효종1) 학문 활동이 활발했던 이곳에 함창김씨·진성이씨·연안김씨 세 문중이 삼봉촌에 삼봉서당을 세운 것이 삼봉서원의 시초이다. 1654(효종5) 서당에 묘우(廟宇) 3칸을 세우고 삼로(三路) 김이음(金爾音,咸昌,?-1409), 온계(溫溪) 이해(李瀣,眞城,1496-1550), 만취당(晩翠堂) 김개국(金蓋國,延安,1548-1603), 물암(勿巖) 김융(金隆,咸昌,1549-1593) 선생을 배향하고 삼봉서원(三峰書院)이라 했다.

김준영 씨
김익주 구은 주손
박경남 구은 주손부인

기자가 삼봉골에 갔던 날 이 마을 김두영 노인회장, 김준영 씨, 김익주 씨와 구은고택 앞 언덕 위 삼봉서원 구지(舊址)에 올랐다. 김익주(69,구은주손) 씨는 기왓장을 하나 주워 들고 “이 자리가 강당 명륜당이 있던 자리”라며 “명륜당(明倫堂) 앞에 동서재 박약재(博約齋)와 수양재(修養齋)있고, 명륜당 뒤쪽에 묘우(廟宇,사당)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두영(72) 노인회장은 “마지막 남은 강당은 1960년대까지 한문을 배우는 서당으로 활용됐다”며 “1970년대 4H활동·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회원들의 모임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준영(66) 씨는 “창건 당시 건물은 어느 해인지 다 소실(消失)됐다고 전해 온다”면서 “그 후 조선 후기(1850년경 추정)에 와서 후손들과 지역 사림이 강당만 다시 건립하여 명교당(明敎堂)이라 하고, 서원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2010년 그 마저 무너져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연안김씨 문중에 의하면 「삼봉서원 현판과 명교당 현판은 만취당에 보관하고 있다가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됐다. 삼봉서원 봉안문(奉安文)과 상량축문(上梁祝文)은 김응조(金應祖)가 지었다. 강당은 정면 3칸으로 중앙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 우측에 마루 반칸과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기록했다.  

아름다운 연당(蓮堂)
구은고택(九隱古宅)

아름다운 연당 ‘구은고택’
이제 삼봉서원의 화려했던 옛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을에 현존하고 있는구은고택(九隱古宅)을 통해 옛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구은고택은 이산면 신암1리 삼봉골에 있는 조선 후기 건축물로 2016년 3월 17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40호로 지정됐다. 이 고택은 조선 후기 경북북부지역 상류주택의 모습과 주거환경을 실제 그대로 볼 수 있어 귀한 문화재로 인정받았다. 구은고택 ‘ㅁ’자형 본채는 1886년(고종23)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며, 그 앞 연당(蓮塘) 가운데 지은 반학헌(伴鶴軒)은 1929년 일제 때 건립됐다고 한다. 구은고택 김익주 주손은 “구은(九隱)이란 저의 5대조 할아버지(성수,만취당의 11세손)의 호(號)”라며 “저의 조부(종백)님께서 구은 할아버지의 호를 따 ‘구은고택’이라 하셨으며, 연당채 ‘반학헌’은 조부님의 호 반학(伴鶴)에서 유래됐다”고 말했다. 이동현(90) 구은고택 종부는 “구은고택이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건립 이후 주거생활이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아들(김익주)과 며느리(박경남)가 계속 거주하면서 보존·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고택은 연당(蓮堂)이 아름답다. 인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연못과 반학헌은 ‘경북지역에서 보기 드문 경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온계 선생이 장가 든 마을
퇴계의 중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가 18세 되던 해(1514년) 이곳 말암(末巖)에 사는 연안김씨 통례원가인의(通禮院假引儀) 김복흥(金復興,1482-1537)의 딸(만취당의 고모)에게 장가들어 처가에서 공부하다가 1525년 진사시, 1528년 문과 급제 후 상경했다. 그 후 온계의 손자 명(溟,1587-1663,護軍)이 말암에 터를 잡았고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신암1리 사람들

신암1리 마을회관
신암1리 경로당
정점순 할머니

신암1리 사람들
기자가 얼음골경로당 앞에 도착했을 때 유모차가 여러 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권정순(88,얼음골)·권연희(81)·곽정숙(81,실래)·강행자(80)·남숙화(80,실내)·황금화(79,삼봉골)·정점순(77,얼음골) 할머니께서 “잘 오이소, 기다리고 있었니더”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권연희 할머니는 “경로당이 있어 참 좋다”며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서로서로 친구하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회관 앞에 ‘새싹농원 황재익 대표, 신지식농업인章 수상’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황재익 씨가 누구냐?”고 여쭈니, 권정순 할머니께서 “우리 셋째 아들”이라며 “인삼 수경재배로 신지식인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삼봉골에 사는 황금화 할머니는 “예전에 남편은 가마니를 치고 나는 꿰맸다”며 “가마니 5장 쳐서 정미소에 가지고 가면 좁쌀 몇 되와 바꾸어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 줬다. 마을탐방 기간 중 신암1리 마을회관 준공식(17일)을 맞이하게 됐다. 삼봉골 초입에 자리 잡은 회관은 넓은 방과 주방시설 등이 현대식으로 잘 갖춰졌다. 최금자(65) 부녀회장은 “오늘 시장님과 면장님 등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다”며 “이렇게 좋은 회관이 들어서기까지 이승학 이장님과 김두영 회장님의 노고가 크셨다”고 말했다.

삼봉골 이연숙(65) 씨는 “예전에는 삼봉서원에서 예절과 학문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이제 마을회관이 삼봉서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며 “오늘 오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우리 최금자 부녀회장 생일 축하도 하고 마을 단합 축하파티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마을회관에는 귀농한 젊은 부부 7집이 합세하여 마을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이승학 이장
김두영 노인회장
최금자 부녀회장
이동현 구은종택 종부
권정순 할머니
권연희 할머니
권정순 할머니
강행자 할머니
남숙화 할머니
황금화 할머니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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