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223] 영주1동 ‘관사골’

추로지향 꿈꿨던 영주선비 계회장소 ‘부용대’
부용대 정신 이어가는 부용경로당 어르신들

관사골 전경

 

부용대 기적비
본래 부용대 모습

영주1동 관사골의 입지
관사골은 구 영주역(현 기독병원)에서 북쪽으로 500m 남짓 가면 관사촌 입구에 다다른다. 영광중 본관 건물 뒤쪽 마을이 관사골이다. 멀리서 보면 왼쪽 산등성이에 부용정이 우뚝하고 오른쪽 산줄기에는 숭은전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5일 관사골에 갔다. 이날 부용경로당에서 손태운 노인회장, 지수업·임점이 부회장, 김종태 사무국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부용대의 역사와 관사골의 내력을 듣고 왔다.

조선 때 망궐리 두서방(斗西坊)
영광중에서 영광여중·서천교로 가는 길을 ‘두서길’이라 한다. ‘왜 두서길이라 할까?’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제일교회·영광중·관사골 지역은 영천군(榮川郡) 망궐리(望闕里) 두서방(斗西坊)이 됐다. 1700년경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개편할 때 망궐면 두서리가 되고, 조선 말 1896년(고종33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망궐면 노상동(路上洞)으로 개칭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영주면 영주리가 됐다가 1940년 영주읍 영주리, 1980년 영주시(영풍군 분리) 영주동, 1995년 통합 영주시 영주1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과 같이 두서(斗西)란 조선 때 망궐면 ‘두서리’ 즉 두서(斗西)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하여 두서길이 됐다.

지명유래
먼저 ‘망궐’이란 지명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 때 영주 선비 김진하(金鎭河,1786-1865)는 부용대속회첩기에 “부용대가 위치한 곳이 망궐리(望闕里)이고, 앞의 물을 사수(泗水)라 했다”고 적었다. 김태환 영주향토사연구소장은 “당시 영주 선비들은 공자가 태어난 중국의 궐리(闕里)와 그곳을 흐르는 사수(泗水)를 그대로 따와 이곳 마을이름을 ‘망궐리’라 하고, 그 앞을 흐르는 물(지금의 서천)을 ‘사수’라 했다”며 “이는 추로지향(鄒魯之鄕,학문의 고장)을 꿈꿔 온 영주 선비들의 강한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용경로당 정진흠 전 회장은 “당시 영주선비들이 공자의 고향 이름 권리 앞에 바랄 망(望)자를 붙여 망궐리(望闕里)라 했다하니 우리가 사는 마을이 유서 깊은 마을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 ‘두서’란 어디에서 왔을까. 영주지에는 ‘두서(斗西)’라 썼고, 영주시사에는 ‘두서(杜西)’로 기록했다. 지명유래 총람에는 「두서(杜西)란 막을 두(杜)자를 써 ‘서쪽을 막는다’는 뜻으로 고려 말 ‘하륜(河崙)’이 강주지군사(剛州知郡事, 옛 영주)로 왔을 때 ‘서편의 제방을 튼튼히 하라’고 한데서 유래됐다」고 적었다. 또 ‘뒤새’란 두서가 변하여 ‘뒤새’가 됐다고 전해온다.

부용대(芙蓉臺)와 부용계(芙蓉契)
부용(芙蓉)이란 연꽃이 피어나기 전의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다. 풍기방향에서 영주시내로 들어올 때 서천교에 들어서면 12시 방향 산등성이에 보이는 정자가 ‘부용대’ 정자다. 이 정자는 최근(2013) 영주시가 부용공원을 설치하면서 세운 정자다. 원래 부용대는 500여 년 전 영주 선비들이 계회(契會)를 열던 장소인데 그 아래쪽에 있었다고 전해온다. 당시 부용계는 영천(영주) 고을에 사는 선비들 중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진사(進士) 27인과 생원(生員) 28인이 이곳에 모여 사마계(司馬契)를 열던 곳인데 나중에 부용대의 이름을 따 ‘부용계(芙蓉契)’라 했다고 한다. 부용대는 처음 이름이 없었는데 부용계원인 금 진사(琴軸)라는 선비가 퇴계 선생께 대(臺)의 이름을 청하니 선생께서 ‘부용대(芙蓉臺)’라 써 주었다고 한다.

 

옛 북청산, 현 관사골 새마을

본래 부용대를 찾아서
그럼 본래 부용대는 어디에 있을까. 옛 문헌에 보면 「부용대는 군(郡) 서쪽 2리(800m)쯤 고청산(高靑山) 기슭에 있는데 대(臺) 아래로 사수(서천)가 흐른다. 숲이 우거져 꾀꼬리가 고운 소리를 낸다. 영천(榮川.옛 영주)에 좋은 정(亭)과 대(臺)가 많은데 여기가 갑을이다」라고 적었다. 5일 오후 4시경 마을 원로 최수목(85)·서우익(83) 어르신과 본디 부용대를 찾아 나섰다. 부용공원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서천교 방향으로 50m 가량 내려갔다. 서우익 어르신은 “여기가 선대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부용대 자리”라고 말했다. 일행은 다시 영주초 앞(옛군치)으로 가서 부용대까지 거리 2리(800m) 지점을 실측해 보니 여기가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부용대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현장에 갔다. 3일 만에 드디어 찾았다. 두서길 19번길 도로 좌측 철거된 집터에서 바위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도로 아래로 내려가 봤다. 고속전철공사로 집들이 모두 철거되고 나서야 가시덤불 속에서 옛 부용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본래 부용대는 현 부용대 정자에서 영주육교 방향 80m 지점에 있다.

 

철도관사

관사골의 유래
관사골은 일제 말 중앙선 철도 건설에 따른 영주역 종사자에게 주어질 관사건립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1936년 영천에서부터 놓기 시작한 중앙선 철도 남부구간은 1941년 7월 영주까지 개통됐다. 1942년 4월 영주-제천 구간이 개통됨으로써 중앙선 전 구간이 완성됐다. 최수목(85) 어르신은 “영주 철도관사는 안동-영주구간 준공 전인 1939년쯤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며 “해방(1945년) 후부터 관사촌 주변에 무허가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6.25이후에는 하룻밤을 자고나면 한두 채씩 늘어나기 시작하여 골짜기 양 옆과 산자락에까지 집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1960년대 초에 영광여중고가 설립됐다”고 말했다. 정진흠(92) 전 노인회장은 “당시 일식관사 내부구조는 실내에 목욕탕과 화장실이 들어가 있는 고급 주택이었다”며 “모두가 초막집, 판자집, 벽돌집에 살 때 철도관사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말했다.

 

부용경로당

부용대와 부용경로당
2013년 가을 경로당 공사가 마무리되어 경로당 이름을 정할 때 통장들은 가칭 ‘관사골경로당’이라 하였으나 마을 원로 여러분께서 “마을의 상징이 부용대”라며 “부용경로당이 타당하다”고 하여 ‘부용경로당’이 됐다고 한다. 서우익 전 총무는 “당시 박갑수(96)·정진흠(92)·손태운(86)·최수목(85) 어르신들께서 부용경로당을 주장하셨다”고 말했다. 부용경로당 어르신들이 부용대 정자에 올라 지은 시를 소개한다.

‘연꽃 같은 영주 부용대 마루에서/천고마비 독서의 계절에 시가를 보니/남쪽에는 우뚝 솟은 문필봉 학가산/북쪽은 과거보러 가는 죽령고개길/산으로 지붕 삼아 고드름 같은 아파트/바람막이 철탄산 숲과 눈 앞에 시가지/중간에 엎드린 거북이 같은 구성공원/선비와 풍류들의 휴식의 다락 가학루/사계절 변화 모습을 한눈에 보는 운치/한국에서 제일 좋은 아름다운 부용대’ 이 시는 정진흠·최수목 어르신이 주거니 받거니 시를 짓고 서우익 어르신이 받아 적었다고 한다.

관사골 사람들

관사골 사람들
손태운(86) 노인회장은 “부용경로당 운영 방침은 화목, 협동, 건강”이라며 “화목을 바탕으로 합력하면서 서로서로 건강을 권하고 챙기는 것을 제일 중요시 한다”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사진첩을 보여주면서 “우리 지수업 부회장님이 직접 사진을 찍어 만든 앨범”이라며 “컴퓨터 속에는 준공식 날부터 지금까지 한 일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고 자랑했다.

지수업(80) 부회장은 “부용경로당에는 선비들이 많다”면서 “손 회장님은 한학자이시고, 정진흠 전 회장님은 역사문화에 밝으시고, 최수목 운영위원님은 관사골의 역사를, 서우익 전 총무님은 경로당 건립 공로를, 이영일 어르신은 화합을, 임윤기 어른신은 친교를, 김정웅 씨는 봉사활동을 많이 하신다”고 소개했다. 김종태(70) 사무국장은 “부용경로당은 시설규모나 활용 면에서 영주시의 으뜸”이라며 “이 모두가 정진흠 전 회장님과 손태운 회장님께서 탁월한 리더십으로 잘 운영해 주신 덕”이라고 말했다.

조순영 할머니

임점이(72) 부회장은 “부용경로당은 하루 30명 이상 모여 건강체조, 친교활동을 많이 한다”면서 “매주 화요일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화목(和睦)’도 같이 먹는다”고 자랑했다. 조숙자(72) 여성총무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서로 솔선수범하고 양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정희(88)·권창호(88) 할머니는 “회관이 있어 너무 좋다. 회장님, 부회장님, 총무님, 젊은 새댁네들이 나이 많은 늙은이를 잘 챙겨 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조순영(80) 할머니는 “1주일에 3일은 율동 선생님이 와서 흔들고 춤추는 건강체조를 한다”면서 “또 매일 30여 명씩 모여 1패에 10명씩 2패로 갈라 윷을 노는데 100원 따는 날은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동네 한 바퀴 구경시켜 주시고 부용대를 찾는데 결정적 도움 주신 최수목·서우익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손태운 노인회장
지수업 부회장
임점이 부회장
정진흠 초대회장
최수목 운영위원장
서우익 전 사무국장
김종태 사무국장
조숙자 여성총무
강정희 할머니
권창호 할머니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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