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222] 부석면 소천6리 ‘탑드리’

사두(蛇頭)에 탑 세워 뱀 쫓고 봉황을 지킨 전설
1900년경 인동장씨 남산파 일족이 물야서 입향

탑드리 마을전경
탑이 있던 자리

 

마을회관

 

동수나무(수령 500년)

 

은행단풍 가로수

부석면 탑드리 가는 길
부석면 소천6리는 면소재지 북쪽 부석사 방향 1km 지점에 있다. 부석회전교차로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들어서면 은행나무길이 나온다. 500m쯤 올라가면 500년 수령 느티나무가 나타나고, 이어서 은행나무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마을이 탑드리다.

지난달 29일 탑드리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이정식 이장, 우병수 노인회장, 이재덕 전 노인회장, 김집 전 이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탑드리
부석사로 가는 길은 예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부석사에서 화엄사상을 전파할 때 수많은 승려들이 오가던 길이기도 하다. 또 당시 영주(옛이름 날이군) 정토사(淨土寺,영주향교자리) 주지(住持)가 영주들에서 농사를 지어 부석사 승려들의 식량을 조달했다고 하니 우마(牛馬)의 통행이 빈번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드리(부석) 지역은 삼국시대 때는 고구려 영토로 이벌지현(伊伐支縣)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때 인풍현(隣豊縣)으로 고쳐 급산군(옛 순흥)에 예속시켰다. 

부석의 옛 이름인 인풍현은 조선 초(1413년) 행정구역 정비 때 1부석면(단산), 2부석면(용암), 3부석면(소천)으로 분할 개편되었는데 소천6리 지역은 3부석면(三浮石面) 방동(方洞,방골)에 속했다. 1457년 금성대군 사건으로 순흥부가 폐부되어 영천군(옛영주)에 속했다가 1683년 회복되어 다시 순흥부에 속했다. 1896년(고종33년) 전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삼부석면은 봉양면(鳳陽面)으로, 이부석면은 용암면으로, 일부석면은 단산면으로 개칭됐다.

이 때 탑드리 지역은 순흥군 봉양면 북지리에 속했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부석면 소천리로 됐다가 6.25 후 인구 증가로 소천6리로 분리됐다. 그 후 1980년 영풍군 부석면 소천6리, 1995년 영주시 부석면 소천6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구령 아랫마을 영취락
부석사 창건(676년) 당시 이 지역은 급산군(옛 순흥) 인풍현이었다. 소백산 마아령(馬兒嶺,현마구령)을 넘나드는 사람과 봉황산(鳳凰山) 부석사(浮石寺)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이 지역은 영취락(嶺聚落)으로 발달했다.

‘영취락’이란, 고개를 넘나드는 통행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주막 등 상업지역을 말한다. 우병수(71) 노인회장은 “살아계시면 120세쯤 되는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기를 ‘아주 옛날 이곳은 물물교환 장이 섰던 곳이다. 탑드리 지역은 말을 먹이는 말죽거리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이곳에 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주막거리나 말죽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탑드리의 전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올라 먼 산을 내려다보면 겹겹 능선들이 봉황산을 감싸 안은 듯 하기도 하고, 봉황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탑드리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150m 가량 올라가면 예전에 탑이 있었다는 탑 터가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산이 두봉산(杜鳳山)이다. 이곳의 모든 지형과 산세는 봉황을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탑드리 마을 탑의 전설 또한 봉황산의 봉(鳳)을 잘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예전에 한 도사(道士)가 마을 앞을 지나다가 “이곳 지형이 사두형(蛇頭形)인지라 뱀이 많다. 뱀은 곧 용이다. 용(龍)이 봉황을 해칠 염려가 있으니 사두에 탑을 세워 뱀을 쫓고 봉(鳳)을 지키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이 말을 들은 촌장은 마을 사람들과 상의하여 사두에 탑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탑들(塔坪)이라 했다. 그 후 뱀은 모두 사라지고 봉황(鳳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재덕(81) 전 노인회장은 “두봉산은 막을 두(杜)자에 봉새 봉(鳳)자를 써 ‘두봉산’이라 한다”며 “두봉산이란 ‘봉황이 떠나지 못하도록 지키는 산’이란 뜻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정식 이장은 “여기에 탑을 세운 연유는 봉황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며 “탑은 없어졌으나 탑 터는 지금도 남아 있다. 옛 탑의 복원이 우리 마을의 숙원”이라고 말했다.

은행단풍 가로수 명소
부석사 가는 길에 만나는 은행단풍 가로수는 영주의 또 하나 명소가 됐다. 부석사거리에서 부석사길로 들어서면 바로 은행나무길이다. ‘언제, 누가 이 나무를 심었을까?’ 궁금하다.

우병수 노인회장은 “1980년대 초 제가 마을일을 볼 때는 영풍군 부석면이었다”며 “당시 영풍군 산림과에서 첫 사업으로 부석사 가는 길에 은행가로수를 조성했다. 이 때 나무 직경 10cm정도 되는 걸 심었는데 지금 이렇게 잘 자라 ‘단풍길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인동장씨 입향 내력
부석의 인동장씨(시조:張金用)는 승록대부 영의정을 지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5대조이신 사천공(泗川公) 장우(張우,남산파조)의 후손이다. 인동장씨 부석문중에 의하면 “장우 파조의 현손 장훈(張焄,19世) 선조께서 임진왜란(1592년) 때 순흥부 물야면으로 피난하여 후손들이 압동·두문 일원에 세거해 왔다. 그 후 입향조의 7대손 수익(壽益) 선조께서 1800년경 ‘허뭇거리’에 자리를 잡았고, 1890년경 장훈의 6대손 일족이 물야에서 탑드리로 이거하여 마을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장지택(65) 씨는 “저의 선대 언제부터 탑드리에 살았는지 정확한 내력을 알 수 없으나 고조부 때부터 여기 사셨다는 이야기를 선친으로부터 들었다”면서 “허뭇거리와 탑드리는 모두 장훈 선조의 후손이다. 고조부님(장훈의 6대손) 대에서 물야에서 갈려 나와 이곳에 정착하신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탑드리 장지형(67) 씨는 “저도 남산파로 장훈 선조下 수익 선조의 후손”이라며 “허뭇거리에 살다가 수년 전 탑드리로 이거했다”고 말했다.

500년 수령 동수나무
부석사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 초입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탑드리 사람들이 동신(洞神)으로 모시는 동수나무다. 남신(男神)과 여신 두 그루로 이루어진 이 나무는 신통력을 가진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정식(55) 이장은 “이 느티나무를 동신으로 모시고 동제(洞祭)를 지낸지 100년이 넘었다”며 “동(洞) 장부에 보면 동적부, 제관, 제물비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동제는 정월 보름날 자시(子時)에 지낸다. 헌관, 축관, 집사가 동신위(洞神位)에 술과 음식을 올린 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는다. 그리고 가가호호마다 행운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 이날 아침 동민들이 모두 모여 음복을 하고 동회(洞會)를 연다”고 말했다.

 

시골아지매

 

새마을 종

 

탑드리 사과

 

탑드리 사람들

탑드리 사람들

추해실 씨

부석사 사과축제장에서 이정식 이장을 찾다가 못 만나고 내려오다가 은행단풍길에서 사과 파는 ‘시골아줌마(추해실씨)’에게 부석사과 두 봉지를 샀다. 그리고 “이장님 댁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 신랑”이라며 이장을 만나게 해 주었다.

우병수 노인회장은 회관 추녀에 달린 새마을시대 때 종소리를 “땡!땡!” 들려주었다. 그리고 “예전에 사두(蛇頭)에 탑을 세우고 ‘탑들(塔坪)’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탑드리’가 됐다”면서 “6.25 후에서 1970년대 초까지 5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26호에 60여명이 산다”고 말했다. 기자가 지난달 27일 사전 답사 차 마을에 갔을 때 텃밭에서 콩 추수를 하고 계신 이재덕·권필희(80) 부부 어르신을 만났다. 권 할머니는 “농사는 텃밭 뿐”이라며 “부석사 가는 길섶 은행나무 가로수가 참 곱고도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뒷산 언덕에 올라 마을풍광 사진을 찍을 때 만난 윤태전(68) 씨는 단풍나무 가로수 길을 가리키며 “부석사의 관문으로 관광객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며 “임곡천 건너 보이는 탑들에 탑드리 사람들의 과수원이 있다. 100% 사과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김집(70) 전 이장은 “마을 돌담길은 2005년 이장으로 일 할 때 시비 지원을 받아 조성했다”면서 “마을 공동체사업으로 노인회 ‘고구마 재배’, 부녀회 ‘시골아줌마’ 마을기업 운영 등이 특색사업”이라고 말했다. 남대리에 살다가 5년 전 이사 왔다는 김순자(89) 할머니는 “우병수 노인회장님과 이정식 이장님 덕에 회관에서 호강하고 산다. 또 부녀회장님과 추해실 이장 댁이 노인들을 위해 친절경로를 해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양순덕(88) 할머니는 “마을 큰 샘(泉)이 회관 자리에 있었다”며 “이 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퍼져 이 물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이정식 이장
우병수 노인회장
이재덕 전 노인회장
윤태전 씨
장지택 씨
김순자 할머니
김집 전 이장
장지형 씨
양순덕 할머니
권필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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