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가끔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과 만날 때가 있다. 일본을 여행한 많은 사람들이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예의바른 것에 대해 놀랐다고 하면서, 우리는 일본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하고,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특성도 알아야겠지만 그런 사회현상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나서 대한민국에 귀화해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사회의 특성을 사무라이 정신에서 찾고 사무라이(武士道) 정신의 핵심을 손자병법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白戰不殆)는 구절에서 찾는다.

우리는 백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百戰百勝)고 알고 있지만 원문은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 옳다. 사무라이는 싸움에 이기기 위해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일에 집중한다. 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일이다. 이길 수 없으면 아예 싸우지 않고 싸움에서 지면 깨끗하게 굴복한다. 일본 사회는 그런 사무라이 정신이 지배하는 사회다.

일본 사람들은 통치자를 승자로 인정하고 통치자에 대해 거의 무조건 복종한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우리의 4.19나 촛불혁명과 같은 민중의 저항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했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촛불혁명에 매우 놀라며 양심적 지식인들은 우리를 매우 부러워한다. 일본은 패하면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 복종하지만 우리는 패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들이 싸울 때도 지면 다음 날 다시 싸우자고 한다. 일본에 사무라이 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함석헌 선생의 씨 정신이 있다. 질 줄 알면서도 옳은 일이라면 절대 굴하지 않는 정신이다. 그 점이 일본과 다른 점이다.

그런데 일본은 2차대전에서 패했으면서도 왜 우리에게 사죄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가? 그들이 패한 것은 미국에게 패한 것이지 우리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일본제국주의 전범들을 처단하는 듯 시늉만 하고 면죄부를 주었다.

3년 뒤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군수품 장사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이내 패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은 나치 전범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처단했지만 일본은 전범자의 후예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있으니 반성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그들의 식민지 침략에 대한 내용이 한 줄도 없다.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그들의 침략전쟁을 알지 못한다. 일본 젊은이들이 늦게나마 다른 경로를 통해 일본의 만행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조상들의 잘못을 후손들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호사카 유지 교수처럼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무라이 정신이 지배하는 일본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소수 비주류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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