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시조시인, 본지 논설위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어디에서 듣고 읽은 것 같다. 우리가 하루에 보고 듣고, 또 그에 따라 느끼거나 떠오르는 생각이 몇 가지인지 정확하게 셀 수는 없다. 게다가 특별한 무슨 고민거리가 있게 되면 온갖 잡동사니 생각이 눈앞에 어른거리게 되는데, 이럴 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고 본인의 심사를 표현하게 된다.

오만가지라는 말은 경상도에서 주로 쓰는 사투리로 그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오만가지라고 표현하지 싶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두고 설왕설래가 빈번하고, 조기 명예퇴임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모양새다. 누구든지 나이를 먹고 누구든지 정년퇴임 또는 명예 은퇴를 하게 되어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맞이한 고령화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퇴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비슷한 위기감을 느낀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비슷할 뿐, 은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자고 하면 모두가 정작 그때부터 골치 아프다고만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 손을 놓거나 밤새 기와집 열두 채를 짓고 허문다.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해서 은퇴에 대해 생각하기조차 싫다면, ‘5F’를 생각하라는 충고가 있다.

오만가지를 단 5개의 ‘F’로 시작하는 영어단어로 정리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5F는 1. Finance(돈 또는 재무), 2. Field(할 일), 3. Fun(재미), 4. Friends(친구), 5. Fitness(건강)이다.

1F만 재무 설계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재무적 설계이다. 하나하나를 살짝 엿보기로 한다. 먼저 1F-돈, Finance(파이낸스)이다. 은퇴할 때 몇 억 원 정도 있어야 한다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노후생활을 위해 한 달 생활비는 어느 정도 돼야 하고, 그 생활비는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라는 문제일 터다.

예를 들어 매월 국민연금에서 얼마, 개인연금에서 얼마, 퇴직연금에서 얼마 해서 일단 연금으로 매월 얼마라고 계산해 본다. 그 다음엔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매월 얼마, 자녀 용돈으로 얼마, 자녀 결혼시킬 때 드는 목돈으로 얼마가 필요할지 등을 따져 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을 배우자가 얼마 동안 살 걸 계산해서 어느 정도는 따로 떼놓아야 할 부분 까지도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이다. 2F인 Field(필드)는 소득을 올리는 일거리뿐 아니라 은퇴 후 남는 시간을 보람차면서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의미한다. 우리도 축구 선수처럼 각자의 필드에서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직장이 필드겠지만 은퇴한 후의 필드는 달라진다. 사진이나 글쓰기, 그림그리기 같은 취미활동이나 자원봉사활동, 귀촌이나 귀농 같은 일이다. 이 때 강조하는 점은 꼭 소득을 얻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무료하지 않은 여생을 누릴 수 있다.

3F는 나와 함께 필드를 누빌 친구, 즉 Friends이다. 돈 있고 할 일 있어도 친구가 없으면 재미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친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배우자와 자녀인 가족이다. 영어로 가족을 의미하는 FAMILY는'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모았다는 멋진 해석이 있다. 평소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거기서 재미를 얻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하지, 뭐”하다 보면 살가운 정은 다 떨어지고 난 다음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 외에도 여러 그룹의 친구들과 사귀면서 등산이나 사진 찍기, 여행, 식도락, 영화 또는 연극 관람 등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돈도 소일거리도 어느 정도 있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부러울 게 없다. 인생이 재미있고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4F는 재미를 의미하는 Fun으로 뽑은 모양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배우자와 함께 떠나라. 친구들과 함께 즐겨라.”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마지막 5F는 Fitness이다. 건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헬스(Health)지만 자신의 은퇴 환경과 생활에 적합한 건강이어야 하므로 피트니스가 더 어울린다. 요즘엔 헬스센터보다 피트니스센터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비재무적 설계에서 다른 영역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제일이다. 돈, 배우자, 좋은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건강이 없다면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또 혹시 모를 큰 병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오래 살아도 5F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삶은 적막강산일 수밖에 없다. 은퇴는 누구나 꺼리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기왕이면 5박자, 즉 5F를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만가지 생각으로 어지러운 은퇴가 금수강산 같은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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