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우리가 아는 미국은 한국전쟁 때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준 나라, 함께 피 흘리며 적과 싸운 혈맹의 나라라는 것이다.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고 전시 작전통제권도 미국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미국은 우리의 동포인 북한보다 가까운 나라다. 유학도 미국으로 가장 많이 가고 이민도 가장 많이 간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미국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가까운 나라로 알고 있다. 미국시민권을 갖는 것을 성공의 상징으로 여긴다. 

역사적인 맥락을 들여다보면 미국은 마냥 고마운 나라만은 아니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통해서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고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 지배하게 한 것도 미국이다. 38선이라는 것을 처음 그은 나라도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처리 문제를 논의 하는 얄타회담에서 미국은 소련군이 한반도에서 일본과 싸울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노일전쟁에서 일본에 빼앗긴 영토를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예상외로 일본이 일찍 항복하자 소련군은 이미 원산에 진격하고 있었다. 미군의 한반도 진격이 늦어지자 미국은 소련에 38선 이남으로 넘어오지 말 것을 급히 제안했다. 그래서 38선이 생겼다.

이에 대해 친미주의자들은 만약 미국이 38선을 긋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랬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역사를 공부할 필요는 있다. 패전국의 운명은 승전국에 의해서 결정된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은 독일과 더불어 패전국이 되었다.

독일은 러시아와 미국에 의해서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 분단이 불가피했다면 패전국인 일본이 분단되어야 했다. 그러나 패전국인 일본이 분단되지 않고 애꿎은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그 결과 독일의 전범들은 철저히 벌을 받았지만 일본의 전범들은 유야무야 되었다. 누구 때문인가?

해방공간(1945~1948)에서 38선을 경계로 북에는 소련군 남에는 미군이 진주해 있었다. 이때 미군이 38선을 긋지 않았다면 공산국가가 세워졌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해방이 되자 한반도에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수많은 정당과 정치력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가장 큰 정치세력이 김구의 임시정부 세력과 죄우합작을 주장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세력이었다. 김구와 여운형은 통일국가가 아니면 나라를 세우지 않으려고 했다. 미국의 비호를 받는 이승만과 소련을 등에 업고 온 북의 김일성은 당시 그 세력이 미미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세력도 김구와 여운형에 미치지 못했다. 미군정은 이승만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자격으로 귀국하지 못하게 했다. 여운형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하고 가을에 귀국한 김구도 이승만 세력에게 경교장에서 암살당했다. 이승만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이 아니었으면 한반도는 김일성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 지금 우리민족끼리는 평화체제에 들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걸림돌이 어떤 세력인지 정신 차리고 살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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