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오피니언
배용호의 문화 확대경[172] 화엄교과서, 부석사 고려각판(高麗刻板)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10.25 10:51
  • 호수 689
  • 댓글 0
 
화엄학교과서로 불리는 부석사 대방광불화엄경 각판(보물 제735호)

부석사는 한국 전통건축의 모범이라고 할 만큼 모든 전각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각종 전각과 석탑, 석등 등이 높이를 달리하면서 입체적으로 안치되어 있어서 신앙과 수행의 도량으로서, 나아가 여행자의 흥미욕구를 채워주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간 배치를 이루고 있다. 부석사 풍광의 으뜸은 역시 부석사 경내 자체라 할 수 있다.

부석사 전경을 조망해 보면 가람배치가 마치 새들이 화려한 날갯짓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다. 거기에 낙조가 보내주는 붉은 기운에다 새들이 날아가는 찰나라도 마주친다면 부석사는 더없는 환상의 모습이 되고 만다.

또한 무량수전, 조사당, 석등, 삼층석탑 등 국가지정 문화재가 즐비하고 거기에다 화엄학교과서라고까지 불리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판목이 보관되어 있어 한층 무게를 더해준다.

보물 제735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으로 분류된다.

그 화엄경 판각을 「고려각판」이라고 이름 하는데, 부석사 「고려각판」은 『화엄경』 진본 60권, 주본 80권, 정원본 40권 등 3종의 대방광불화엄경을 나무판에 새긴 것이다. 삼본화엄경은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한 60권의 『화엄경』 진본(晉本)과 당나라 무주(武周) 때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의 『화엄경』 주본(周本), 당나라 정원(貞元) 연간에 반야(般若)가 번역한 40권의 『화엄경』 정원본(貞元本)을 일컫는다.

부석사 「고려각판」은 모두 3종 634판이고, 현재 장경각(藏經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 634판을 한 줄에 34자씩 글자를 배열한 특이한 형식이다. 13〜14세기경 거란에서 불경을 수입하여 나무판에 다시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전해지는 유일한 거란본 계열의 각판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에 속한다. 「고려각판」이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명확해진다.

학계에서는 원종·충렬왕 때의 고승인 복암(宓庵)이 「안본대장경찬소(丹本大藏經讚疏)」에서 ‘지박자밀(紙薄字密)하여 부질(部帙)이 간경(簡輕)하다’고 언급한 경의(經義, 경서) 계통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이 부석사 각판에서 2부를 찍어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이관한 삼본과 면밀히 대조해본 결과, 위의 첫 번각본(飜刻本, 다시 새겨낸 복각본)을 바탕으로 다시 새겨낸 중번각(重번刻)에 속하며, 여기에 추각(追刻)한 보판(補板)이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닳아진 것을 다시 새기고 없어진 부분을 추가로 새겨 보완했다는 뜻이다. 이 부석사의 각판은 두 번째 다시 새기고, 보수한 것이 보이며, 더욱이 잃어버린 부분까지 있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란본계 세자무주(細字無註, 주석 없이 글자만 새긴)의 34자본은 오로지 여기 부석사 각판만이 전래되고 있으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각판 수는 일제강점기 사찰 보수 때에는 674판이었으나, 1982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정밀 조사한 결과 모두 634판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초·중 번각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거란장경은 우리나라에 1063년, 1099년, 1107년에 세 차례 수입되었는데, 그 중 2차의 것이 복암 고승의 ‘지박자밀 세자무주 34자본’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석사의 사세(寺勢)가 희종의 다섯째 아들인 충명국사(충明國師) 각응(覺膺)이 주지직에 있을 때 크게 번창하였음을 감안하면 12세기에서 13세기 중엽에 번각되었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의 「고려각판」에 의하면 새로 판서본(板書本)을 써서 보각한 것이 여기저기에 혼입되어 있다. 그 중 진본 권제32의 9장 각판에는 “隆慶二年茂辰正月日慶尙道榮州地太伯山浮石寺開板?이라고 새겨져 있다. 1568년 이전에도 경판을 잃어버리거나 닳아 없어짐으로 인하여 보각이 일부 이루어졌음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여간 부석사의 「고려각판」은 완전하게 보존된 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거란본 계열의 각판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화엄종찰 부석사의 화엄학교과서로서 그 특별한 가치를 지녔기에 무량수전, 조사당, 석등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는 중요한 문화재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영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