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주 톺아보기 우리마을 탐방
겨울에 천도(天桃) 얻어 어머니 병 낫게 한 효자 권득평우리마을탐방[219] 단산면 동원2리 등영·자봉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8.10.18 15:34
  • 호수 688
  • 댓글 0

달성서씨 영주 입향조 서한정의 첫 터전 등영마을
200년 전 청량산-금강산 유람기 ‘봉해첩’의 산실

동원2리 마을 전경

 

동원2리 마을회관

 

동원2리 사람들

동원2리 등영·자봉 가는 길
단산면 동원2리는 안정면 동촌2리 피끝마을에서 동쪽 방향 죽계천 건너로 보이는 마을이다. 피끝과 조개섬마을 사이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자봉교(紫鳳橋) 건너면 자봉마을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마을 앞을 지나 북쪽으로 1km 가량 올라가면 등영마을이다. 또 사천1리 새내마을에서 동쪽방향 들길을 가로질러 가다가 등영교(登瀛橋)를 건너면 곧 바로 등영마을이다.

지난 7일 동원2리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조규현 이장, 서무원 노인회장, 나영분 부녀회장, 서용석 새마을 지도자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동원2리
동원리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에 속했다. 세조 3년(1457년) 금성대군 변란(정축지변)으로 도호부가 폐부되자 풍기군에 속했다가 숙종 9년(1683년) 순흥부(順興府)로 회복되면서 다시 순흥부 산하가 됐다. 조선 중기 무렵(1700년) 부(府)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동원면(東園面) 등영리(登瀛里)와 자분리(自分里)로 각각 독립된 행정구역을 가지게 됐다.

조선 말 1896년(고종33년)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동원면(東園面)이 동원면(東元面)으로 개칭되었으며, 자분리(自分里)와 구미리(龜尾里)를 합쳐 통합 구미리(九尾里)로 개편했다.

이 때 등영리(登瀛里)는 등영리(登英里)로 바뀌게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순흥군, 풍기군, 영천군이 영주군으로 통폐합되고, 동원면이 단산면에 흡수 통합되면서 영주군 단산면 동원2리가 됐다. 1980년 영풍군 단산면 동원2리, 1995년 영주시 단산면 동원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자봉에 20가구, 등영에 10가구가 산다.

 

등영마을 돈암 후손들

‘신선의 세계에 오른다’는 등영
달성서씨 영주 입향조는 단종 절신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1407-1490)이다. 돈암은 세종조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대과를 준비하던 중 계유정란(1453년)을 당하자 대과 응시를 포기하고 소백산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처음 처외가인 영주 한성동에서 우거(寓居)하다 만년에 순흥부 오지마을 등영에 몇 칸의 초막을 지어 살 곳을 마련했다.

마을이름은 등영(登瀛)이었다. 등영은 등영주(登瀛洲)와 같은 말로 영주(瀛洲)란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이에 오른다는 것은 ‘신선의 세계에 오른다’ 뜻이다. 또 과거에 급제 하거나 영예로운 지위에 오르는 일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돈암은 의도적으로 등영을 등강(登岡,언덕에 오른다)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등영에 사는 돈암의 후손 서석균(72) 씨는 “돈암 입향조께서 등영(登瀛)을 등강(登岡)이라 한 것은 단종에 대한 강한 절의와 자신의 처지(處地), 그리고 지극한 겸손에서 나온 것 같다”면서 “돈암 선조의 후손들은 이 후 200여 년간 등영에서 세거하다 7세 눌헌 서정구(1663-1735) 대에 이르러 대부분 새내로 이주하고 일부는 등영에 남았다”고 말했다.

 

권득평 천도술잔

 

권득평 정여비

효자 권득평이 살던 마을
등영마을 뒷산 언덕에 효자 권득평(1462년 진사급제)의 비(碑)가 있다. 비문에 「효자성균진사권공득평지여(孝子成均進士權公得平之閭)」라고 새겼다. 비 뒷면에 홍치기미정려(弘治己未旌閭)라 썼다. 1499년 마을 앞에 홍문(紅門)을 세웠다는 뜻이다. 권 효자의 효행은 삼강행실도(宣德七年,1432)와 신동국여지승람, 해동잡록에 잘 나타나 있다. 삼강행실도에 「진사 권득평은 풍긔사라미라, 제 아비 눈을 ~ 중략 ~ 고 기록했다. 또 순흥지(順興誌)에도 「동절득천도(冬節得天桃) 모병득전(母病得전)…」 겨울에 천도를 얻어 어머니 병를 낫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 마을 서무원(77) 노인회장은 “권 효자비를 찾아오는 학교 선생님들이 많다”며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권효자 효행자료제작’을 위해 왔다’고 했다. 그 여교사는 ‘최근 효교육과 안자육훈 교육 때 권효자 천도 일화를 많이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서용석65) 씨는 “효자 득평이 겨울에 얻은 천도로 어머니 병을 낫게 하고 그 복숭아씨로 잔을 만들었는데 그 잔은 지금도 후손들이 제향 시 술잔으로 쓰고 있다”며 “현재 이 술잔은 후손 권기홍(50,서울) 씨가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해첩 원본

봉해첩의 산실(産室) 등영
봉해첩(蓬海帖)은 등영 출신 남애(南厓) 서간발(徐幹發,1774-1833)이 200년 전인 1818년 등영을 출발하여 청량산-동해-금강산을 유람하며 비경, 명물, 풍요를 체험하고, 시인들과 만남의 감흥과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어려움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봉해첩의 ‘봉(蓬)’은 봉래산(蓬萊山) 곧 금강산을 말하며, ‘해(海)’는 동해를 지칭한다. 일정은 57일간이고, 짚신 두 짝으로 둘러본 거리는 2,445리(978km)에 이른다. 2018년 여름 봉해첩이 발간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200년 전 금강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석호 남애 후손

남애공의 6대손 서석호 주손은 “남애 선조께서는 돈암 입향조의 12세손”이라며 “등영마을은 남애 할아버지께서 봉해첩을 저술한 산실(産室)이기도 하고, 철저한 가학(家學)과 서당교육을 통해 수많은 인재(문과급제)를 배출한 학문의 요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황금물결 일렁이는 자봉(紫鳳)     
죽계 동쪽에 있는 자봉마을은 황금물결 일렁이는 풍요의 마을이다. 농부가 그린 그림이 정말 아름답다. 김기철(77) 노인회 총무는 “자봉은 이곳 지형이 붉은 새가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붉은 자(紫)자에 봉새 봉(鳳)자를 써 ‘자봉(紫鳳)’이라 부른다”며 “동네 전체가 넓은 들을 바라보는 아담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말했다.

조규현(50) 이장은 “조선말 행정구역 개편 때 이곳 선비들이 죽계 동쪽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 하여 동원(東元)이라 이름 지었다”며 “동원의 중심지인 자봉마을은 1960-70년경에는 40여 가구가 사는 큰 마을이었으나 산업화 때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20여 가구가 산다”고 말했다.

 

제비봉 방울서낭당

제비봉 방울 서낭당
등영마을 서낭당은 본래 제비모랭이에 있었는데 어느 땐가 마을 뒷산 정상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 마을 서무원 씨는 서낭당의 전설에 대해 “예전에 한 장수(將帥)가 말을 타고 가는데 이 마을 앞을 지날 때 말이 갑자기 멈추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화가 난 장수는 말에서 내려 말의 목을 쳐 죽이고 가버렸다.

이날 이 광경을 본 마을촌장 꿈에 낮에 죽은 말에서 떨어진 방울이 어디론가 굴러가기에 따라가 봤다. 방울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더니 제비봉 약간 아래쪽에 멈춰 서는 게 아닌가. 잠에서 깬 촌장은 ‘올커니, 방울이 명당을 가르쳐 주었구나!’라고 기뻐했다. 다음날 마을사람들과 상의하여 길섶 서낭당을 제비봉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등영 사람들은 정월보름날 자시(子時)에 서낭제를 올린다. 서석균 씨는 “등영 서낭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고, 각 가정의 평안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고 말했다.

동원2리 사람들
지난 5일 기자가 사전 답사차 자봉마을 앞을 지나다가 회관 옆 고추밭에서 장사건(83)·조언순(79) 어르신 부부를 만났다. 두 분은 “원래 좌석이 고향인데 이곳에 온지 50년이 됐다”며 “당초 조금 살다 가려고 했는데 풍광이 아름답고 인심이 좋아 눌러 앉아 살게 됐다. 또 마을의 상징인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고도 했다.

나영분(63) 부녀회장은 “마을 이장님과 노인회장님이 마을을 잘 건사하셔서 늘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며 “자봉은 풍수해 피해가 전혀 없어 해마다 풍년”이라고 말했다.

봉화 명호가 친정이라는 정 숙(85) 할머니는 “19살에 김해김씨가에 시집와 자붕에 66년 살았다”며 “옛날에 고생한 것 말로 다 못하고, 지금은 좋은 세상을 만나 호강하며 산다”고 말했다. 최종식(69) 전 이장은 “동원2리는 마을 앞 들이 경지 정리가 잘 되고 수리시설이 좋아 벼농사가 발달했다”면서 “자봉들에 300마지기, 등영들에 150마지기 등 넓은 들을 가진 풍요의 마을”이라고 말했다.

전하귀 씨

이산면 이르실이 고향이라는 전하귀(72) 씨는 “2011년 개관한 마을회관은 마을의 사랑방이기도 하고 쉼터이기도 하다”며 “겨울에는 온종일 화투치고 윷놀다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기자를 제비봉(278m) 정상 방울서낭당까지 안내해 주신 서무원 회장님과 서석균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조규현 이장

 

서무원 노인회장

 

나영분 부녀회장

 

서용석 새마을지도자

 

장사건 어르신

 

서석균 노인회감사

 

김기철 노인회총무

 

최종식 전 이장

 

정 숙 할머니
조언순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영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